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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중화권을 달궜던 중국 로켓군 대숙청설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건군절을 하루 앞둔 7월31일 신임 로켓군 사령관과 정치위원이 임명됐죠. 체포설이 나돌던 리위차오 전 사령관이 공식적으로 교체된 겁니다.

7월25일에는 자살설이 제기됐던 우궈화 부사령관 사망 부고도 나왔어요. 숨진 날짜가 7월4일인데 21일이 지나고 나서 군 당국의 공식 부고가 나왔습니다.

이런 식으로 소문을 확인한다는 건 이번 사태가 수습 국면이라는 걸 의미하겠죠. 하지만 느닷없이 벌어진 이번 대숙청의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7월31일 시진핑 주석 주재로 열린 중국 로켓군 신임 사령관과 정치위원 진급식 장면. /CCTV 캡처

◇확인된 소문, 드러나는 진상

중국은 우궈화 부사령관 부고를 내보내는 것으로 이 사건에 대한 확인을 시작했어요. 과거 상급자였던 장샤오양 전 인민해방군외국어학원 원장(소장)이 조문을 다녀온 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니 3층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고 합니다.

다음날인 7월26일에는 중앙군사위 전군무기장비구매정보망에 ‘전국장비구매입찰심사전문가의 위법위규 행위에 대한 제보 모집 공고’가 올라왔어요. 이번 대숙청이 군납 비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은근슬쩍 내비친 겁니다.

7월4일 자살한 우궈화 로켓군 부사령관의 빈소. 조문을 다녀온 장샤오양 소장이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트위터

7월28일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좀 더 자세한 내막이 공개됐어요. 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원회가 리위차오 사령관과 장전중 전 부사령관(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부참모장), 류광빈 현 부사령관 등 3명을 부패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초대 로켓군 사령관을 지낸 웨이펑허 국방부장이 은퇴한 직후인 올 3월 시작됐다고 해요. 웨이펑허 국방부장도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로켓군 고위장성들은 진급 전엔 평판이 좋았는데 베이징 본부에 오고 난 뒤 방위산업 분야 기업과 접촉하면서 부패하게 됐다”고 했더군요. 이번 사건의 배경이 군 내부 부패 문제라는 겁니다.

◇전·현직 지휘관 10여명 조사

중국 내 숙청 사건은 통상 부패 문제로 포장하죠. 시진핑 집권 이후 숙청된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도 그랬습니다. 실제로는 무장경찰을 동원한 권력 전복 시도가 원인이었지만 당내 갈등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부패 문제로 발표했습니다.

서방이나 중화권 전문가들은 이런 배경 설명에 대해 믿지 않는 분위기이에요. 그보다는 군사 기밀 유출, 당에 대한 충성도 약화 등 다른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군사 기밀 유출 문제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16년1월 시진핑 주석이 새로 신설된 로켓군의 웨이펑허 초대 사령관에게 군기를 수여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로켓군은 원래 제2포병부대였다가 시 주석 집권 이후인 2015년 육·해·공군에 이은 네 번째 군종으로 승격됐어요. 핵미사일과 첨단 재래식 미사일을 운용하는 전략미사일부대로 중국군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숙청에는 초대 사령관과 3대 사령관, 정치위원, 부사령관 등 로켓군 최고위 지휘관 10여명이 포함됐다고 해요. 단순한 납품 비리 문제 때문에 전략미사일부대의 전·현직 최고위층을 싹쓸이하듯 조사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입니다.

◇군사 기밀 유출에 초강경 대응

그보다는 로켓군의 기밀이 줄줄이 미국에 유출되자 시 주석이 대규모 조사를 지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게 들려요.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작년 10월 미국 공군대학 산하 중국우주항공연구소(CASI)가 발표한 방대한 분량의 ‘중국 로켓군 보고서’가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보고서에는 로켓군 조직 구성, 지휘관과 고위 책임자의 신원, 각급 부대의 위치와 좌표, 배치된 미사일 종류 등 세밀하고도 종합적인 정보가 담겨 있어요. 심지어 산하 부대 취사반 정보까지 나옵니다. 로켓군 내부에 미국으로 정보가 새나가는 구멍이 있었다는 얘기이죠.

중국군이 2월25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27로 추정되는 미사일. /웨이보, MDAA

지난 4월 미 국방부 기밀 문건 유출 사건도 충격을 줬다고 합니다. 주 방위군 소속 일병이 유출한 펜타곤 기밀문서 중에는 중국군이 지난 2월25일 신형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 둥펑-27(DF-27)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죠. 이 미사일이 12분 동안 2100㎞를 날아가면서 평균 마하 8.6의 속도를 낸 것 등을 포함한 상세한 시험 데이터가 나와 있었습니다.

◇해·공군 출신 ‘예스맨’ 기용

중국 로켓군은 해·공군과 달리 전력 면에서 미국과 대등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대만 침공 때는 대만해협 일대에 미사일을 쏟아부어 미 항모전단의 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할 선봉부대이죠. 미국이 이런 부대의 구성과 부대 위치, 보유 미사일 종류 등에 대한 첩보 수집에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켓군 고위 장성들은 정치와 무관한 과학기술 분야 인재들이 많아요. 대만 침공 시 미군이 로켓군 주요 기지부터 족집게식 타격을 가할 것이고,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다 보니 대만 침공 준비에 소극적이었고, 이것이 대숙청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어요.

7월31일 상장(대장)으로 진급한 왕허우빈 신임 로켓군 사령관(윗줄 왼쪽)과 쉬시성 신임 로켓군 정치위원(윗줄 오른쪽)이 시진핑 주석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신화 연합뉴스

시 주석은 신임 로켓군 사령관과 정치위원에 해·공군 출신을 앉혔습니다. 로켓군 출신은 못 믿겠다는 뜻이죠. 하지만 인공위성, 로켓, 전략미사일 등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과연 제대로 로켓군을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시 주석으로서는 말 잘 듣는 인물을 앉혀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베테랑 지휘관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로켓군 전력이 약화되고 중국군의 대만 침공 준비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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