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부동산 업체 비구이위안 건물./로이터 연합뉴스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왔다[兵臨城下].’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맞은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의 상황을 중국 경제 잡지 ‘중국기업가’는 최근 이렇게 평가했다. 사태가 위급하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중소도시에 고급 아파트를 지어 덩치를 불린 이 회사는 2017년부터 6년째 신규 주택 판매 1위를 기록해 ‘우주 제일 부동산 기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은 전날 홍콩증시 공시를 통해 상반기 순손실이 450억∼550억 위안(약 8조2000억∼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작년에 기록한 순손실 61억위안(약 1조1000억원)의 10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비구이위안은 2007년 홍콩 증시 상장 이후 작년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비구이위안은 “최근 매출과 차환 환경 악화로 가용 자금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비구이위안은 디폴트 위기에도 직면했다.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채권 이자 2250만 달러(약 296억원)를 지불하지 못했다. 유예 기간인 30일 안에 이자를 갚지 못하면 디폴트다. 어렵사리 이번 고비를 넘겨도 다음 달과 내년 1월에 또다른 채권들의 이자 만기가 줄줄이 돌아온다. 작년말 기준 비구이위안의 총부채는 1조4300억위안(약 260조5000억원)으로 2년 전 디폴트를 선언한 경쟁사 헝다(2조위안)의 70%를 넘는다.

비구이위안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중국의 주택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등 투기 억제 기조가 이어진 가운데, 작년 들어 경기 둔화 여파까지 겹친 결과다.

특히 올해 들어 상황이 나빠졌다. 중국 정부가 각종 금융 지원책 등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약발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 부동산 경기 하락기에 대도시보다 타격을 많이 받는 중소도시의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건설 중단도 속출하고 있다.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당국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 이후 시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더딘 경제 회복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중국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 위험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산업화, 인구 유입, 부동산 수요 확대’의 선순환이 깨져 구조적으로 부동산 판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홍콩 증시에서 비구이위안의 주가는 올해 초 고점 대비 70% 폭락했다. 11일 홍콩 증시에서는 상장 이후 처음으로 주가가 1홍콩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던 비구이위안 공동 회장 양후이옌의 자산은 주가 폭락 등으로 2년 전 대비 286억달러(약 37조원) 증발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투자자들은 양후이옌이 경영난 해소를 위해 사재를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비구이위안의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건설 업계 전반의 ‘도미노 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중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적인 외환거래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업체 중 하나인 비구이위안이 무너지면 부동산 시장에서 신뢰 위기가 발생해 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 당국은 상황이 심각해지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는 11일 오전 부동산 업체·금융기관 화상회의를 열고 부동산 업체들의 경영 상황을 긴급 점검했다. 증감위는 이날 회의에서 부동산 업체들의 매출 현황과 현금 흐름, 부채 상황 등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베이징의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추가 부양책을 내놓겠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