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부동산 업체 비구이위안 건물./로이터 연합뉴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맞은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이 올해 상반기 최대 10조원의 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1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은 전일 홍콩증시 공시를 통해 상반기 순손실이 450억∼550억위안(약 8조2000억∼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해 기록한 순손실 61억위안의 10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중국 경제 잡지 ‘중국기업가’는 비구이위안의 상황을 ‘적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왔다[兵臨城下]’고 표현했다. 사태가 위급하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부동산 공룡’인 비구이위안이 무너지면 ‘도미노 도산’ 사태가 벌어지며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무너질 수 있다.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위기는 최근 계속 제기돼 왔다.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채권 이자 2250만달러(약 296억원)를 지불하지 못했다. 유예 기간인 30일 안에 이자를 갚지 못하면 디폴트다. 어렵사리 이번 고비를 넘겨도 다음 달과 내년 1월에 또다른 채권들의 이자 만기가 줄줄이 돌아온다. 작년 말 기준 비구이위안의 총부채는 1조4300억위안으로 2년 전 디폴트를 선언해 글로벌 경제에 큰 충격을 준 경쟁사 헝다(2조위안)의 70%를 넘는다.

그래픽=양인성

비구이위안이 심각한 위기에 빠진 이유는 중국의 경기와 부동산 시장이 동시에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지난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당국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로 시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더딘 경제 회복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2021년 이후 중국 지도부가 부동산 업체를 겨냥해 규제를 확대하고 투기 억제 정책을 펴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시작됐다. 특히 올해 들어 중국 경기가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에 진입할 조짐을 보이며 부동산 시장은 더 가라앉았다.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는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전년 동기 대비 -0.3%)에 진입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 따르면 7월 신규 대출은 3459억위안으로 2009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만큼 돈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6월엔 신규 대출 규모가 3조위안으로 지난달의 10배 수준에 달했다.

홍콩 증시에서 비구이위안의 주가는 올해 초 고점 대비 70% 하락했다. 11일엔 상장 이후 처음으로 주가가 1홍콩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비구이위안발(發) 공포로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날 2% 하락했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었던 비구이위안 공동 회장 양후이옌의 자산은 주가 폭락 등으로 2년 전 대비 286억달러(약 38조원) 증발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투자자들은 양후이옌이 경영난 해소를 위해 사재를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비구이위안의 디폴트가 현실이 될 경우 건설 업계 전반의 ‘도미노 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적인 외환거래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중국에서 가장 큰 부동산 업체 중 하나인 비구이위안이 무너지면 부동산 시장에서 신뢰 위기가 발생해 시장 자체가 폭락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 지도부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사태를 잘 수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는 11일 오전 부동산 업체·금융기관 화상회의를 열고 부동산 업체들의 매출 현황과 부채 상황 등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