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주(州)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이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를 언급한 지 3시간 만에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에 나섰다. 이번 훈련은 표면적으로는 대만 집권 민진당의 총통 후보인 라이칭더 부총통이 12~18일 남미 방문 일정을 소화하며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에 항의하는 훈련이지만, 한·미·일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전날 오전 6시(현지 시각·한국 시각 오전 7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용기 45대와 군함 9척이 대만 인근 해상에서 훈련했고, 이 중 27대의 군용기는 대만해협 중간선을 침범하거나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중국과 대만의 실질적인 경계선 역할을 한다.
중국군의 이번 군사 훈련은 라이칭더의 출국 직후인 15∼16일(군용기 16대·군함 6척), 16∼17일(군용기 10대·군함 6척)에 비해 규모가 대폭 커졌다. KJ-500 조기경보기, Y-9 전자전기, J-10·J-11·J-16·Su-30 전투기, Z-9 대잠헬기 등 주요 군용기들도 총동원됐다.
대만해협을 관할하는 중국군 동부전구는 19일 훈련 영상을 공개하며 “계획대로 대만섬 주변 해역·공역에 도착해 전방향으로 섬 포위 진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스이 동부전구 대변인은 “동부전구가 대만섬 주변에서 해군·공군 연합 전시 대비 순찰과 병력 합동 훈련을 했다”면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분열 세력이 외부 세력과 결탁해 도발하는 것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했다.
중국이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군사 시위를 벌인 것은 라이칭더 방미에 대한 항의를 넘어 한·미·일 결집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상회의 공동성명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서는 3국 간 신속한 협의, 정보 공유, 메시지 동조화, 대응 조율 등의 내용을 담았다. 뉴욕타임스(NYT)는 “3국이 안보 협력 강화에 합의하면서 중국이 ‘아시아판 나토(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인 나토에 버금가는 한미일 안보 공동체)’ 형성을 우려하며 경계심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성명은 중국에 대해서는 “역내 평화와 번영을 약화” “국제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 우려”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국제 질서를 저해하는 주체로 직접적으로 지목한 것은 처음이다.
중국은 3국 성명에 등장한 대만 관련 입장도 주목하고 있다. 한·미·일 정상은 18일 오후 3시(현지 시각·한국 시각 19일 오전 4시)에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국제 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면서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등장한 “양안 문제 평화적 해결 촉구”라는 문구는 최근의 한·미 또는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에는 없었던 것이다. 한·미·일이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에 명확한 반대의 뜻을 밝히며 중국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대만 외교부는 19일 “미·일·한이 작년 11월 3국 정상회의 후 재차 공개적으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지지하는 견고한 입장을 천명해준 데 대해 진심으로 환영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지난 18일 중국 관영지 환구시보는 전문가를 인용해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신냉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했고,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일 정상회의에 대해 “패거리를 만들고, 진영 대결을 아시아·태평양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향후 대만해협뿐 아니라 미·중이 대립하는 지역에서 잇달아 군사 시위를 벌이며 긴장을 높일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일본 통합막료감부(합참 격)에 따르면 지난 17일 중국 함정 6척과 러시아 함정 5척이 오키나와섬과 미야코지마 사이 해역을 북서진해 동중국해를 향해 항행했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중국의 ‘대만 봉쇄’ 압박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