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중국 초청으로 21~23일 베이징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 이후 여당의 첫 방중이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잇따라 맞이했던 중국이 ‘여당 배제’ 전략을 탈피하고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린 직후 중국이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이라 주목된다. 한 의원은 “중국에서 싸움만 하고 돌아갈 것을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인 중국의 한·중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속한 방중단은 지난 21일 중국인민외교학회가 주최한 ‘제23차 한중고위지도자포럼’(22일) 참석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다. 국민의힘 3선인 하태경(부산 해운대 갑) 의원과 이용호(전북 남원·임실·순창) 의원을 비롯해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전 총무처 장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로 활동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등 15명이 초청됐다. 주최 측인 중국인민외교학회는 1949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설립한 중국 최초의 공공외교 기구다.
방중단은 베이징에서 부총리·장차관급 인사들의 환대를 받았다. 첫날 오후에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부총리급인 딩중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격)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 간담회·만찬을 가졌다. 이튿날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베이징 귀빈루호텔 3층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중국 고위급들과 토론했다. 중국 측 주요 인사는 장관급인 왕차오 중국 인민외교학회 회장, 차이우 전 문화부 장관, 닝푸쿠이·추궈훙 전 주한중국대사 등이다. 이날 만찬은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도 함께 했다. 하태경 의원은 “중국에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나온 것은 예상 밖”이라고 했다.
중국 인사들은 의원들을 만나 한·미·일 정상회의 등에 대해 한국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딩중리 부위원장은 “한·중 관계 악화 원인은 한국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사실상 미국에 화살을 돌렸다고 한다. “한·중 관계 악화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면서 직·간접적으로 한국을 비판했던 기존 입장을 달리한 것이다.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캠프 데이비드 정신’)의 대만 관련 언급은 예상보다 수위가 낮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변경에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이번 성명에서는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를 가리키는 ‘힘에 의한’이란 문구가 빠지고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말만 들어갔다.
한·중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 방안도 논의됐다.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회담하는 방안이 집중 거론됐다. 우리 정부가 오는 11~12월에 서울 개최를 추진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중국 인사들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관례상 시 주석이 아닌 중국의 이인자 리창(李强) 총리가 참석하게 된다.
포괄적인 양국 경제 협력 확대가 한·중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의견에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태경 의원은 “양측 모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을 빠르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양국은 2015년에 FTA를 체결했고, 2017년말부터 2단계 협상을 시작했다. 한·중 공급망 협력 강화와 지방정부·국회 간 교류 확대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양측은 북한 문제에서는 의견이 명확히 갈렸다고 한다. 하태경 의원은 “우리 측에서는 중국의 제재 동참을 요구했고, 중국은 ‘제재는 북핵 문제에 효과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이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작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다. 그러나 올 초 ‘한·중 비자 갈등’, 윤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한 중국 측 반발(4월),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논란(6월) 등이 이어지며 양국 관계의 경색 국면이 장기화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미·일의 결속이 강화된 만큼 틈이 벌어진 중국과의 관계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 압박과 자국 경제 악화 속에 한국과의 협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달 11일 ‘사드 사태’ 직후 중단했던 중국인의 한국 단체여행 비자 발급을 전면 재개했다. 지난달 3일에는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개최한 ‘3국 협력 국제포럼(IFTC)’에 중국 외교 라인 서열 1위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참석해 “비바람이 지나간 뒤 햇빛이 찾아온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이번 방중을 사전에 외부에 알리지 않았고, 중국 측도 관영 언론에서 보도를 자제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1일 한국 의원들의 방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딩중리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이 한국 대표단을 인민대회당에서 만났다. 양측은 중한 관계와 입법기구 교류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