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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체 연쇄 부도 위기, 위안화 환율 추락, 외자 유출….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 경제의 위기를 전하는 소식이 쏟아집니다. 인민은행이 기준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하면서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평가가 많아요. 중국은 위기를 해소할만한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8월21일 싱가포르의 친중 매체 연합조보에 경제 위기의 책임이 시진핑 주석에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장문의 글이 게재됐어요. 중국 정치자문기구인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을 지낸 류멍슝(劉夢熊·75)이라는 홍콩 사업가가 쓴 글입니다.
홍콩의 중량급 친중 인사가 싱가포르 친중 매체에 시 주석을 직격하는 글을 실었다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에요. 중화권에서는 한주 내내 이 글이 화제였습니다.
◇“경제 위기의 뿌리는 정치”
이 글은 ‘경제가 문제이지만, 그 뿌리는 정치다(問題在經濟,根子在政治)’라고 제목을 달았어요. 류 전 위원은 민영기업 연쇄 부도와 외자기업 철수, 직접 투자 위축, 수출입 급감, 소비 회복세 부족, 대규모 실업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개혁개방 이후 용감하게 전진해왔던 중국 경제가 왜 수년 만에 상황이 급변해 이렇게 추락하게 됐나”고 반문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에요. 정치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정치운동을 문제로 꼽았어요. 철 지난 마르크스주의와 투쟁철학을 앞세워 사유재산제를 흔들고, 국가안보 논리를 남용한 반간첩법 도입으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다 보니 외국자본이 주춤하고 해외 관광객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는 “중국 경제가 상승할 수 있었던 주요인은 대륙의 정치가 계급투쟁을 중단하고 경제 건설을 중심에 세웠기 때문”이라면서 “판에 박힌 정치운동 방식으로 법치를 기반으로 한 자유시장경제를 키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수년간 계속돼온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 부문의 비중을 늘리고 민간 부문을 축소한다) 문제도 지적했어요. 개혁개방기에는 민영기업가의 합법적 권익과 신변 안전 보호를 통해 고도성장을 이뤘는데, 지금은 국내 민영기업은 물론 사기업에까지 공산당 지부를 설치해 통제하고 민영기업의 사유재산권까지 흔드는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는 겁니다.
중국 내에서는 지난 수년간 “사유제를 소멸시켜야 한다” “사유경제 역할은 끝났다”는 등의 극좌파식 주장이 쏟아졌죠. 지방에서는 민영기업에 온갖 부담을 지우고 꼬투리를 잡아 재산을 몰수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투자 의욕을 잃고 해외로 이민을 떠나는 기업가들이 속출했죠. 류 전 위원은 “경제의 양대 주력군인 민영기업과 외자기업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중국 경제가 하락세를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탈중국 자초한 오만과 환상
1인 지배 체제가 강화되면서 마오쩌둥 시대의 개인숭배가 부활한 것도 문제로 봤어요. 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정책이 나와도 잘못을 지적하고 고칠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이 없다는 거죠. 대표적인 사례가 제로 코로나로 불리는 극단적인 방역정책이었습니다. 팬데믹을 과학에 기반한 공공위생정책으로 풀지 않고, 중국의 제도적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투쟁의 기회로 삼았다가 경제를 망쳤다는 거죠. 미중 관계도 거론했습니다. 아직도 개발도상국 신세인데, “경제와 과학기술, 종합국력에서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미국과 윈윈해온 관계가 깨졌다는 거죠. 또 수년간 계속된 거친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로 사방에 적을 만들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대다수 국가와 달리 러시아 편을 들어 고립을 자초했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방자한 외교가 서방기업의 대중 투자 철수, 공급망 탈중국, 무역 탈중국으로 이어져 중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는 거죠.
그는 “중국 경제의 쇠퇴는 정치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진 나쁜 결과”라면서 “교조적 사회주의로 돌아가 공산당 정권 안전만 꾀한다면 스탈린 체제 하 소련처럼 사회적 모순이 더 격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내 민주화를 사회적 민주화로 확대하고 서방국가는 물론 러시아와도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에 매진하는 베트남을 배우라고도 했어요. 시진핑 주석의 이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지만, 내용은 시 주석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서방에서는 시 주석이 중국 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는 지적이 여러 번 나왔죠.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5월28일 자에서 이 문제를 커버 스토리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시진핑 책임론을 정면으로 거론하는 글이 거의 없었어요.
◇친중 인사, 친중 매체도 등 들려
류멍숭은 광둥성 출신으로 홍콩으로 밀항해 선물과 외환 투자로 큰돈을 번 인물입니다. 2006년 중국 정부가 선정한 전국우수민영기업가에 꼽혔고, 2008년에는 중앙 무대로 진출해 정협위원까지 지냈어요. 이후에도 홍콩 친중 매체 동방일보 칼럼을 통해 중국 정부를 지지하고 홍콩 민주파를 비판하는 글을 써왔습니다.
이런 인물이 싱가포르의 친중 매체에 시 주석을 직격하는 글을 썼어요. 그것도 시 주석이 브릭스 정상회의 참석차 남아공에 도착한 날을 게재 시점으로 삼았습니다.
류멍슝의 글이 당장 시 주석 정권에 타격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시 주석의 경제 위기 책임론을 환기시킨 효과는 적잖을 것으로 보여요. 중국 국내외에서 시 주석의 집권이 계속되는 한 중국 경제는 활로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점점 더 확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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