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트럼프’로 불리는 궈타이밍(郭台銘·73) 폭스콘 창업자가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지난 5월 17일 친중 성향 국민당의 총통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지 3개월여 만이다. 궈타이밍의 출마로 친중표가 갈리면서 반중 성향 민진당의 총통 선거 승리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총통 선거는 내년 1월 13일 치러지며, 당선자는 내년 5월 20일 차이잉원 총통의 뒤를 이어 대만을 이끌게 된다.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는 28일 오전 대만 총통부(총통 집무실)를 마주 보는 장룽파기금회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통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대만해협과 미·중 관계를 언급하며 “대만이 절대로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4년이란 시간을 허락해 주면 대만에 50년의 평화를 가져다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이날도 트레이드 마크인 대만 청천백일만지홍기가 새겨진 파란색 모자를 쓰고 나와 성조기가 새겨진 모자를 쓰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다. 기자회견은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생중계됐다.
궈타이밍의 출마 선언으로 대만에서는 친중표가 두 갈래로 나뉠 전망이다. 궈타이밍은 애플 아이폰 조립으로 유명한 대만 폭스콘의 창업주이자 대만 최고 갑부다. 중국 본토를 기반으로 사업을 키워왔기 때문에 친중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1970년 국민당에 입당하며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 수십 년 동안 대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총통 후보로 거론돼왔다.
특히 허우유이 국민당 총통 후보가 고전 끝에 지지율 2위로 올라선 시점이라 국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껏 대만의 대선판은 선두를 달리는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 부총통, 국민당의 허우유이 신베이시 시장,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주석의 3파전으로 치러지고 있었다. 허우유이는 줄곧 3위에 머물다가 이달 들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메이리다오전자보가 지난 11~15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라이칭더는 35.7%로 부동의 1위였고, 허우유이(21.9%), 커원저(21.7%)가 0.2%포인트 차이로 2위와 3위였다. 허우유이가 지난 5월 국민당 후보로 나선 이후 2위에 오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다만 궈타이밍은 “야권의 통합만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며 허우유이와의 단일화 여지를 남겼다. 일각에서는 궈타이밍의 가세로 라이칭더에게 쏠려 있는 유권자들의 시선이 야권으로 옮겨가며 판세가 바뀔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여론조사기관 퀵시크가 지난 17∼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궈타이밍의 지지율은 12.4%로, 허우유이(16.2%)와 비교해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궈타이밍의 이번 대권 도전이 2019년의 데자뷔란 지적도 있다. 궈타이밍은 그해 총통 선거에 도전하기 위해 폭스콘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국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당내 총통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가 총통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둔 밤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궈타이밍의 불출마 선언은 친중 성향의 국민당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중국의 관여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편 대만 대선판이 반중으로 기울어지자 중국은 국민당 인사들을 챙기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만 국민당 소속의 장완안(蔣萬安) 타이베이 시장은 솽청포럼 행사 참석을 위해 29일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다. 중국 당국은 지난 4월 마잉주 전 총통의 방문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대접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화권 매체들은 “상하이에서 장완안을 융숭히 대접해 대만 내 중국 친화적인 분위기 조성을 노리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