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대 캠퍼스에서 만난 역사학과 학생은 “중국 최고 대학에 들어왔지만, 취업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룰 정도”라며 “예전에 선배들은 재학 중에 대규모 투자를 받아 스타트업을 창업했는데, 요즘 우리는 창업은커녕 선배들의 스타트업에 들어가기도 힘들다”라고 했다. 앞서 지난 7월 이 대학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졸업생이 구내식당 주방 직원으로 입사해 화제가 됐다. 베이징대에서 석사를 마친 졸업생의 구내식당 취업은 이 학교 재학생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선 “오죽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으면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도 구내식당에 취직했겠느냐”며 취업난을 성토하는 글로 와글와글했다.

경제 침체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원성이 커지자, 중국 정부가 ‘신(新)하방(下放·도시 청년을 농촌으로 내려보내는 정치 캠페인)’ ‘대학생 가정부 육성’ ‘대학생 군입대’ ‘선취업(블루칼라 직종) 후취학’ 등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청년들을 달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청년들의 장밋빛 미래를 강조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젊은이들은 고난을 더욱 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며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오는 9일 인도에서 열리는 G20(20국)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불참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청년 실업 등 중국 경제난도 꼽고 있다. G20 정상회의엔 리창 총리가 대신 참석한다. 중국 정부는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회담도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상태다.

중국의 지난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체감 실업률은 이보다 더 크다는 게 문제다. 베이징대 경제학자 장단단은 중국의 실제 실업률이 정부 발표보다 2배 이상인 46.5%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등 떠밀려 해외로 나가는 ‘강제 유학’도 늘고 있다. 지난달 21일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중국의 해외 유학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23.4% 늘었다. 유학마저 떠날 수 없는 청년들은 대졸자가 하지 않던 일에 뛰어들거나, 결국 취업을 포기하고 신빈곤층으로 전락해 정부를 비난하는 불만 세력이 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부족한 일자리와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청년들이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려는 희망을 잃었다”고 전했다.

그래픽=정인성

청년들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어록도 젊은 층의 ‘환멸’을 부추기고 있다. 앞서 시진핑은 “중국 청년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전망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다”며 희망을 강조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청년들이 어려움을 참고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5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시진핑 주석의 청년관을 집중 분석한 기사에서 “젊은 세대는 고생을 맛보고 괴로움을 참고 견뎌야 하며(吃苦耐勞),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自力更生)”는 시진핑 발언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艱苦奮斗), 교만과 교태를 제거하고 버려야 한다(摒棄驕嬌)”는 시진핑 어록도 내세웠다.

이런 메시지가 청년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가운데 청년 실업과 부동산 위기 등을 지적한 원로들 조언에 시진핑이 분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온라인 연재 ‘시[習)]정권 워치’에 따르면, 올여름 전·현직 지도부가 국가정책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공산당 수뇌부 출신의 거물급 원로들이 별도 회의를 열어 현 지도부에 전달할 의견을 모았다. 이를 대표해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베이다이허 회의에 참석해 ‘더 이상의 혼란은 곤란하다’는 취지의 조언을 강한 어조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을 받은 시진핑은 “과거 3대(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가 남긴 문제를 모두 덮어씌운다”며 다른 자리에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는 거물급 원로들이 건강 등 석연찮은 이유로 불참한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에 대해 “시 주석 취임 후 지난 10년과 올해 회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