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을 다룬 미국 영화 ‘오펜하이머’가 18일 중국에서 누적 흥행 수입 약 714억원(3억9200만위안)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 7월 개봉한 미국 영화 ‘바비’의 흥행 수입(누적 2억5000만위안)을 넘어섰다. 지난달 말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첫날부터 극장 점유율 20%를 넘기며 지금까지 1·2위를 오가고 있고, 중국의 온라인 평점 사이트(더우반)에 48만개의 리뷰가 달릴 정도로 인기다.
중국인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중국계 과학자 ‘양전닝(楊振寧)’, ‘친(親)공산주의자’를 오펜하이머 흥행 비결의 키워드로 꼽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오펜하이머의 흥행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거세진 중국 내 반일(反日) 감정과 연관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에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내용이 중국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덕분에 ‘미국산 영화’임에도 ‘애국 영화’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과학 영웅이 오펜하이머와 인연이 깊었던 역사적 사실도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됐다. 1957년 중국계 과학자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양전닝 중국과학원 원사는 1950년 오펜하이머의 초청으로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에 방문 학자로 머물렀다. 당시 오펜하이머는 미국 이민국이 양전닝의 학생 신분을 문제 삼자 그를 조교수로 승진시켰고, 중국에 있던 양전닝의 아내가 미국으로 올 수 있도록 비자 발급을 돕는 변호사도 소개했다. 훗날 양전닝은 오펜하이머에 대해 “규칙에 갇혀 있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성향의 사람”이라며 “그가 없이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바이두(중국판 네이버) 등에선 최근 ‘오펜하이머와 양전닝’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오펜하이머가 영화 속에서 친(親)공산주의자로 묘사된 점도 중국 관객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오펜하이머는 동생과 아내, 내연녀, 다수의 친구가 공산주의자였다. 한때 공산주의 사상에 동조했던 정황도 있다. 영화는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인 ‘매카시즘’을 다루며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국 관객들은 이를 ‘공산주의자를 억압하는 나쁜 미국’을 폭로한 장면들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