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한 애플 매장에서 사람들이 새로 출시된 아이폰 15 휴대전화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AFP 연합뉴스

“새벽 1시부터 줄 섰습니다.”

중국에서 애플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15가 판매를 개시한 22일 아침, 베이징의 번화가 싼리툰 애플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서 만난 고등학생 저우모(17)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개장 예정 시각인 오전 8시보다 7시간 전에 도착해 대기 줄의 맨 앞을 차지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명도 각각 새벽 4시와 5시에 현장에 왔다고 했다. 개장 시각이 임박하자 문 앞에 서 있던 인파는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애플 매장의 한 직원은 “예약자마다 수령 시간을 다르게 배정했는데도 인산인해”라고 했다. 애플은 지난 13일 아이폰15 시리즈를 처음 공개했고, 22일부터 중국을 포함한 ‘1차 출시국’에서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미·중 갈등 고조 속에 중국에서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열풍이 불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애플 사랑’은 막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2018년부터 국력 신장에 따라 국민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미·중 갈등으로 애국주의가 확산하면서 국산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화웨이가 가장 큰 피해 기업이 되면서 중국제 스마트폰을 쓰자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19년 화웨이의 고성능 반도체 조달을 차단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최신형 AI(인공지능) 반도체와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봉쇄했다. 지난달 말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7나노(nm·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화웨이 찬가’가 울려 퍼지는 중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최근 공무원들에게 아이폰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고 알려지면서 화웨이가 중국 시장에서 더 유리해졌다.

22일 오전 8시 베이징 싼리툰의 애플 매장앞에 아이폰 신제품 예약자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그러나 중국인들은 여전히 아이폰에 열광하고 있다. 아이폰 예약이 시작된 지난 15일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티몰에서는 아이폰15 시리즈 고가 모델인 프로·프로맥스가 예약 판매 시작 1분 만에 동이 났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징둥에서도 아이폰15 시리즈 사전 주문이 300만건을 넘었다. 애플 중국 홈페이지는 예약 판매 시작 후 10분 만에 서버가 다운됐다. 지난해 애플의 중국 매출은 4000억위안(약 73조원), 판매 대수는 5432만대에 달해 2019년(2855억위안, 3280만대)에 비해 3년 만에 금액 기준으로 40% 늘었다. 올해 2분기에는 전 세계 아이폰 판매의 24%가 중국에서 발생해 본고장인 미국(21%)을 앞섰고(IT 조사 업체 테크인사이츠), 중국의 600달러(약 80만원) 이상 고급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의 점유율은 65.4%(시장조사 업체 IDC)를 기록했다.

중국인들의 애플 사랑은 ‘애플 대체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날 애플 매장에서 만난 베이징의 대학원생 왕모(22)씨는 “애플 기기의 사용 환경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중국산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먀오모(24)씨는 “나는 화웨이 폰도, 삼성 폰도 쓰지 않고 아이폰을 고수할 것”이라고 했다.

9월 22일 중국 상하이의 한 애플 매장에서 애플의 신형 아이폰 15가 중국 전역에서 공식 판매되는 가운데 한 여성이 신형 아이폰 15 프로와 화웨이 메이트 60 프로를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 뉴스1

중국 청년들의 과시 욕구와 리셀(re-sell·재판매) 재테크가 가능한 것도 아이폰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직장인 장모(27)씨는 “최신 기종 아이폰을 보유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날 아이폰 매장 주변에는 아이폰15를 수령한 이들에게 웃돈을 주고 구매하려는 업자들도 나타났다. 아이폰15 가격은 8999위안(약 165만원·512GB 기준)으로, 베이징 대졸 직장인 첫 월급(6500~8000위안)보다 높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화웨이 등 자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지원금과 홍보 수단을 몰아줄 경우 애플의 중국 내 시장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이 작지 않다. 화웨이는 25일 가을 신제품 발표회를 개최하는데, 이때 중국의 관영 매체들은 화웨이의 첨단 기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전망이다. 이날은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딸인 멍완저우 화웨이 순회 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국제 제재 위반으로 캐나다에 억류됐다가 풀려나 중국으로 귀환한 지 2년째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화웨이의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65% 늘어난 3800만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의 IT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 초도 판매에 구매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면서 “화웨이 등 국산 업체의 고급 스마트폰을 체험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아이폰의 점유율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중국 문화·기술 기반의 자국 제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 중국을 의미하는 궈(國)와 유행·트렌드를 뜻하는 차오(潮)를 합쳤다. 링링허우(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층)가 주도하며, 2018년부터 화장품·IT·의류·식음료 등 중국 소비 전반으로 확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