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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상푸 중국 국방부장 실종 사건이 요즘 국제 사회의 최대 화제입니다. 8월29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 국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뒤 3주 이상 공개석상에 나오지 않고 있죠. 로이터 등은 소식통을 인용해 “리 부장이 부패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올 들어 중국 고위층 실종 소식은 한두 번이 아니죠. 6월 말 친강 전 외교부장, 리위차오 전 로켓군 사령관 등이 사라졌고 이번엔 리 부장도 모습을 감췄습니다. 이외에도 리 부장 전임인 웨이펑허 전 국방부장 등 실종됐다는 고위급 인사의 숫자가 10명을 훌쩍 넘어가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X(옛 트위터)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닮은꼴”이라고 조롱했을 정도입니다.
워낙 실종 소식이 잦다 보니 국제사회에서는 실종 자체보다 그 이유와 배경이 더 큰 관심사에요. 리상푸나 친강은 모두 시 주석이 발탁해 고속 승진을 시킨 측근들입니다. 현직에 앉은 지 6개월도 채 안 됐어요. 홍콩 주둔군 대변인을 지낸 청둥팡 군사법원장도 9월1일 임명 10개월 만에 면직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과거 스탈린처럼 가까운 측근조차 믿지 못하는 독재자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와요.
◇‘군 현대화’ 책임진 태자당 출신
리상푸 국방부장은 아버지가 인민해방군 철도병 부사령관을 지낸 태자당 출신입니다. 국공내전에서 큰 공을 세웠고 6·25 전쟁에도 참전했다고 하죠.
리 부장은 국방과학기술대를 나와 시창위성발사센터 주임 등 우주 항공 분야에서 일해온 인물인데, 시 주석 집권 이후 고속 승진을 시작했습니다. 2014년 총장비부 부부장이 됐고, 2016년에는 우주전과 사이버전, 첩보위성 관리 등을 담당하는 전략지원부대 초대 부사령관을 맡았죠. 2017년 중앙군사위 장비발전부장으로 승진했고, 올 3월에는 국방부장에 발탁됐습니다. 최고 군사 기구인 중앙군사위의 위원이기도 하죠.
맡아온 이력으로 보면 시 주석의 역점 사업인 ‘중국군 현대화’를 책임져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8년에는 러시아에서 수호이-35 전투기와 S-400 방공미사일을 구매했다가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기도 했죠.
리 부장은 친강 전 외교부장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내각 장관이 아니라 국무위원입니다. 장관보다 한 등급이 높은 부총리급으로 리창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원 상무회의에 참석하는 고위급 인사죠. 중국 당국은 리 부장의 현재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대변인조차 “모른다”고 했더군요.
◇취임 6개월도 안돼 숙청
중화권 소식통들이 전하는 소식을 들어보면 리 부장은 장비발전부장으로 일할 당시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리 부부장이 발탁한 6명의 부부장(차관급)과 2명의 국장도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해요. 친강 전 외교부장은 주미대사 시절 홍콩 한 위성TV 앵커와 혼외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 아이를 낳은 게 문제가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중국 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을 그대로 믿는 중국 전문가들은 거의 없어요. 중국군의 부패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닌데, 이런 단순한 이유로 측근을 치겠느냐는 겁니다. 혼외관계 문제도 마찬가지죠.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 주석에 대한 충성심 같은 정치적인 문제나 대외 기밀 유출 같은 사안이 걸려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 선임연구위원이면서 홍콩 중문대 교수인 린허리는 “부패 문제와 함께 충성도와 관련된 이슈가 있다”고 했어요.
리 부장과 친강 전 외교부장은 시 주석이 발탁해 고속 승진을 시켰고, 올 3월 세 번째 임기 출범에 맞춰 부총리급 장관에 임명한 측근들입니다. 이들의 낙마는 시 주석에게도 큰 타격이라고 할 수 있겠죠. 도대체 최고 지도자로서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겁니다. 이런 체면 손상을 각오하고 측근들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만 침공, 시 주석과 의견 달라”
대만 침공 문제에 대한 시 주석과 중국 군부 간 의견 차이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시 주석은 대만 침공을 적극적으로 주문하지만, 중국 군부는 승전 가능성이 작고 막대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쟁을 꺼린다는 거죠.
인민해방군 해군사령부 중샤오(중령) 출신인 재미평론가 야오청은 호주 ABC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군 전반의 분위기는 전쟁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린허리 교수도 “중국 군부가 입으로는 시 주석에 대한 충성을 외치지만, 대만 침공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했어요.
군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에 실망한 시 주석이 자신이 발탁한 측근을 대거 숙청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숙청된 인물들은 모두 군부·외교 라인의 고위 인사들이죠.
◇“2차대전 전 스탈린 연상시켜”
독재자의 함정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3개월 사이에 두 명의 국무위원을 속전속결로 숙청한 건 그만큼 믿고 발탁한 측근들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는 거죠.
천안문사태 주역 중 한 명으로 반체제 운동가인 왕단은 “시진핑은 의심이 많아지고 해코지를 당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외톨이가 되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함정에 빠졌다”며 “고위층 숙청을 보면 2차대전 전 스탈린의 모습이 연상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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