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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10월 중순 회수 조치를 취한 명나라 시대 역사서 '숭정 :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 군주'. /웨이보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1611~1644)를 다룬 한 역사서가 10월 중순 갑자기 회수 조치를 당한 일로 중국 국내외가 시끄럽습니다. 중앙민족대 교수를 지낸 명나라 역사 전문가 천우퉁(陳梧桐·1935~2023)이 쓴 ‘숭정 :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 군주’라는 제목의 책인데, 9월 출간 이후 한 달여 만에 중국 서점에 깔린 책은 물론, 인터넷 전자책까지 모조리 사라졌다고 해요.

사실 이 책은 2016년 구궁출판사에서 나온 ‘숭정제의 지난날-명제국의 마지막 장면’이라는 책을 상하이원후이(上海文滙)출판사가 제목만 바꿔 다시 펴낸 겁니다. 천우퉁 교수가 지난 5월 타계한 것을 계기로 책을 다시 찍은 거죠.

7년간 문제없이 팔리던 책을 갑자기 회수하는 소동이 벌어지자 중화권에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옵니다. 의심이 많아 신하들에게 잔혹했고, 우유부단하고 무능했던 숭정제에 빗대 시진핑 주석을 풍자한 것으로 보고 중국 당국이 책 회수를 지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요.

◇회수 조치에 가격 30배로 뛰어

이 책은 학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명나라 말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대중 역사서입니다. 새로 나온 책이 서점에서 모두 사라지자 갑자기 2016년에 나온 책 가격이 원래 가격의 27배까지 뛰어올랐다고 해요. 정가가 46위안(약 8500원)인데, 1380위안(약 25만6000원)까지 호가가 치솟았습니다. 중고서적도 300위안(약 5만5600원)에 매물이 나왔더군요.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회수 조치를 당했는지 궁금한 겁니다.

숭정제는 명나라 16대 황제로 광종 태창제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광종이 1620년 재위 40여일 만에 병으로 죽고, 형인 희종 천계제도 22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1627년 16세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명나라는 그의 할아버지인 신종 만력제 때부터 몰락의 길을 걸어요. 주색과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진 만력제는 국고를 탕진하고 정사를 멀리했다고 합니다. 형인 천계제 때는 환관 위충현이 국정을 농단했죠.

이런 선대 황제들과 비교하면 숭정제는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검소한 생활로 국고 낭비를 줄였고 국정을 좌지우지해온 위충현과 그가 이끄는 엄당(閹黨·내시당)을 숙청해 국정의 틀을 바로 잡았다고 해요. 정사에도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한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2016년 출간 역사서 ‘숭정제의 지난날-명제국의 마지막 장면’에 1380위안의 가격이 매겨져 있다. 정가는 46위안이다. /웨이보

◇“의심 많고 신하 냉혹하게 처단”

반면, 의심이 많아 신하들을 불신했고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했다고 해요. 성격이 조급하고 당장의 성과에 집착해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신하들을 내치거나 처단했다고 합니다. 일이 잘못되면 신하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재위 17년간 병부상서(국방장관)를 14번이나 교체했고, 형부상서(법무장관)도 17명이나 바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숭정제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해요.

명나라 말기는 북으로는 후금이 침공해오고 안으로는 이자성의 난이 일어난 내우외환의 시기였습니다. 기상 악화와 천재지변으로 흉작이 계속돼 민심이 흉흉했다고 해요. 이런 상황인데도 숭정제는 전비 마련을 위한 증세를 계속해 곳곳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천우퉁은 책에서 “멀리 보는 치국의 방략 없이 당장의 성과와 이익에 집착하다 보니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우왕좌왕하고 서두르다 보니 목표로 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고 썼어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 /조선일보DB, 바이두

◇역사 빌어 시진핑에 대한 불만 표출

새로 펴낸 책은 숭정제의 이런 문제를 ‘패착을 반복했고 연거푸 실수를 했다(昏招連連步步錯)’ ‘열심히 정사를 돌볼수록 나라는 망해갔다(越是勤政越亡國)’는 광고 문구로 요약했습니다. 최악으로 꼽히는 ‘무능하고 부지런한 리더’였다는 거죠.

해외 평론가들은 표지에 쓰인 이 문구들이 중국 당국의 신경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봅니다. 중국은 정치적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역사를 빌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죠. 숭정제를 빌려 시진핑 주석을 비판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집권 3기를 맞은 시진핑 주석은 올해 자신이 발탁한 측근 고위인사들을 줄줄이 숙청했죠. 지난 3년여 동안은 과학적 근거보다 사회주의 체제의 우위를 강조하는 제로 코로나 방역정책을 고집했다가 중국 경제를 나락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미중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도 악화일로에 있죠.

숭정제를 다룬 신간 역사서 '숭정 :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 군주'의 회수를 요청하는 출판사의 10월16일자 통지문. 출판사 측은 각 서점에 "인쇄 문제로 발행된 책을 회수한다"고 밝혔다. /웨이보

◇2020년에도 숭정제 비유 글 올라와

시 주석을 숭정제에 비유한 글은 2020년초에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중국 포털사이트 왕이에 ‘숭정제가 나라를 망칠 때 모든 사람이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는 짧은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된 적이 있어요. 당시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막 시작돼 중국 곳곳에서 봉쇄조치가 내려질 때였습니다. 중국 정부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시 주석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을 숭정제에 빗대 비판한 글이었어요.

중국 당국은 거의 봉쇄작전에 돌입한 분위기입니다. 새로 나온 책은 물론, 2016년에 나온 책도 지금은 모두 회수 조치가 이뤄졌다고 해요. 올 8월에 허난문예출판사가 출간한 천우퉁의 ‘숭전전’도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 검색도 차단했더군요.

중국 당국이 평범한 역사서에 이렇게 기겁하는 걸 보면 자신들이 보기에도 ‘시진핑=숭정제’라는 등식이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입니다.

숭정제를 다룬 신간 역사서 '숭정 : 부지런히 정사를 돌본 망국 군주'의 저자인 천우퉁 전 중앙민족대 교수의 생전 모습. 그의 지인이 웨이보에 올린 사진이다. 공산당원으로 명나라 역사 전문가인 그는 올해 5월31일 사망했다.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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