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만 헌화 허용 - 28일 고(故)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옛 거주지인 안후이성 허페이시 훙싱루(路)의 한 건물 앞 도로에 시민들이 놓고 간 조화(弔花)가 가득 차 있다. /AP 연합뉴스

갑자기 세상을 뜬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옛 거주지인 안후이성 허페이시 훙싱루(路) 80호 ‘안후이 문화역사 연구원’ 앞에는 28일 ‘니은(ㄴ)’자로 ‘꽃벽’이 세워졌다. 전일 68세로 사망한 리커창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저녁부터 몰려들어 조화(弔花)를 바쳤다. X(옛 트위터)에 올라온 영상과 사진을 보면 헌화 행렬은 한때 300m가 넘었다. 꽃 더미가 계속 쌓여 남자 성인 키 높이를 넘어서자 뛰어올라 꽃을 던지는 시민들도 있었다. 리커창은 1955년 허페이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건물 주변에선 상인들이 국화 꽃다발을 평소의 세 배 가격인 80위안(1만5000원)에 팔았다. 그럼에도 도시 전체에 국화가 동이 나 인근 지역에서 꽃을 공수하는 일도 일어났다. 시민들이 꽃과 함께 전한 쪽지에는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黃河不會倒流]’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幹, 天在看]’ 등 리커창의 생전 발언이 주로 적혀 있었다. 같은 날 저녁 리커창이 생전 한때 허난성장으로 일하며 도시 개발을 주도했던 허난성 정저우의 중심가에는 그의 흑백사진과 함께 ‘인민의 좋은 총리’라는 대형 글자 조형물이 세워졌다.

리커창이 심장마비로 급사한 후 그의 고향과 과거 근무지에선 추모 열기가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 베이징과 지도부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개혁 성향이었던 리커창에 대한 추모 열기가 높아지는 것이 껄끄러운 중국 지도부가 리커창 부고에 대한 ‘냉처리(冷處理)’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냉처리’란 찬물을 끼얹듯 특정 사안의 주목도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조치를 뜻한다.

과거 중국에서 개혁파 지도자의 추모 행사가 대규모 시위로 번졌던 선례가 있어 지도부가 이를 경계한다는 분석도 있다. 1976년 저우언라이 총리 사망을 계기로 일어난 추모 행사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4·5운동으로 이어졌고, 1989년 4월엔 후야오방 총서기가 사망하자 전국에서 추모 분위기가 일어 그해 6월 천안문 시위를 불렀다.

29일 아침 7시 베이징의 천안문으로 향하는 젠궈먼네이다제(街) 등은 통행이 금지됐다. 택시 운전사는 “천안문 접근 자체를 막은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 등 주요 도시의 대학엔 ‘모임 금지령’이 내려졌다. 베이징대 영화협회 위챗(중국 휴대폰 메신저) 공식 계정은 27일 학교 측 통지에 따라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모든 학회 활동이 금지된다’고 안내했다가 내용을 삭제했다. 11월 3일은 리커창의 장례식이 베이징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다.

상하이자오퉁대의 한 강사는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에 “교직원들이 리 전 총리 사망과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을 하지 말고, 주말에도 학생들의 교내외 활동을 추적하란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하이난대에선 학생 단체들에 ‘소셜미디어에 추모 글을 게시해선 안 된다’는 공지가 전달됐다. 다만 난징대에선 28일 학생들이 리커창을 추도하는 편지를 학교 게시판에 붙이며 조용히 추모했다.

중국 각지에서는 야외에서 뛰는 마라톤 대회를 제외한 크고 작은 행사가 일제히 취소됐다. 실내 음악 공연이나 예술 행사, 비즈니스 포럼과 아울러 어린이 행사까지 취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과 방송에서도 ‘리커창 노출 최소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28일 오전까지만 해도 ‘리커창 동지 부고’가 검색어 순위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저녁엔 그 순위가 47위까지 떨어졌고 29일에는 아예 사라졌다. ‘리커창 동지 별세’라는 검색어는 28일 22억 조회 수를 기록했지만 29일엔 20위권으로 떨어졌다. 29일 중국의 대표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 50위에서는 리커창이 자취를 감췄고,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훙수에서 ‘훙싱루’ 등 리커창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면 대부분이 검열된 것으로 나타나 리커창 관련 내용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중국 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경우 28일 신문 1면에 리 전 총리 부고 소식을 건조하게 전했다. 그의 생전 활동이나 업적 등을 소개하는 별도 기사는 내지 않았다. 27일 CCTV 메인 뉴스 프로그램 신원롄보(新聞聯播)는 리커창 사망 소식을 뉴스 시작 14분이 지난 후에야 보도했다. 장쩌민 사망 당시엔 뉴스 시작부터 1시간가량 그에 관한 내용으로 채웠던 것과 대조적이다. 리커창의 부고는 리펑 전 총리(2019년 사망) 부고와 비슷하게 2256자(字)였지만, ‘시진핑 사상’ 등의 언급이 많아 실제 분량은 적었다.

리커창의 급사를 중국 지도부가 예상하지 못해 대비가 부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SCMP는 28일 “국영 CCTV가 리커창 사망을 보도한 지 10시간 30분이 지난 뒤에 부고를 낸 것은 그의 부고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