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중국 헝다그룹의 청산 소송 심리일이 연기됐다. 지난해 6월 헝다 청산 청구 소송이 제기된 이후 7번째 연기다. 30일 중국 경제매체 디이차이징에 따르면 홍콩고등법원은 이날 오전 예정됐던 헝다그룹의 청산 소송 심리일을 12월 4일로 늦췄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은 “이번 연기가 마지막”이라고 밝혀 다음 심리일이 헝다의 회생 가능성을 판가름할 심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헝다의 주요 투자자인 톱샤인 글로벌은 헝다가 8억6250만홍콩달러(약 1412억원)의 채무를 갚지 않았다며 청산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헝다그룹은 청산을 피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구조조정안 마련에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3월 기존 부채를 새로운 채권과 주식 연계 상품으로 맞바꾸는 200억 달러 규모의 역외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으나,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 속 채권자들과 합의에 난항을 겪었다. 9월에는 중국 당국 조사로 신규 채권 발행이 불발됐고 부동산 판매 실적도 예상보다 부진했다. 결국 헝다는 9월에 개최 예정이던 주요 해외 채권자 회의를 취소하고 구조조정 계획 또한 철회했다. 아울러 쉬자인 헝다그룹 회장이 범죄 연루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사령탑도 사라진 상황이다.
헝다가 다음 법원 심리에서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청산 명령이 내려진다. 법원은 청산인을 지정해 헝다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블룸버그는 “청산이 확정될 경우 헝다는 홍콩에서 청산을 맞이하는 최대 부동산 업체가 된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헝다가 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3년째 헝다의 부도 처리를 미뤄왔다. 헝다그룹은 지난 2021년 말에 해외채 디폴트에 빠지며 중국 부동산 위기를 초래했다. 현재 헝다의 총 자산은 2400억 달러인 반면 부채는 약 3270억 달러(약 443조원)에 달한다.
헝다그룹의 한 채권자는 로이터통신에 “헝다의 청산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현재로서는 더 나은 방안이 헝다로부터 나오기 어렵다”면서 “청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청산 명령이 내려져도 헝다가 즉각 사망 선고를 받는 것은 아니다. 헝다가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 정부가 홍콩 법원의 명령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헝다가 청산되면 중국 부동산·금융 시장 전반에 광범위한 충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정부가 국영 기업들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사태 수습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헝다는 디폴트에 직면한 이후로 수십만 채 주택 공사를 중단했고, 수천 개의 하청 업체에도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상태다. 한편,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 부동산 공룡인 비구이위안은 이달 유예기간 중 달러채 이자 지급에 실패하면서 디폴트가 공식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