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의 오랜 벗’으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100)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별세하자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미 관계의 증인’이 떠났다”며 그의 생애를 집중 조명했다. 중국 지도부가 가장 신뢰하는 미국 인사였던 키신저는 1970년대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의 주춧돌을 놓은 주역이고,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자주 중국을 드나들었다.
지난 30일 중국 국영 CCTV는 키신저 전 장관의 생애를 돌아보는 1분 57초 분량의 영상을 공개하고 “키신저 전 장관은 중미 관계 발전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活化石)”이라며 “그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공식 방중을 성사시켜 세계를 뒤흔든 ‘태평양을 넘어선 악수’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중국신문망은 키신저 전 장관이 생전에 중국을 100 차례 방문한 ‘중미 관계의 증인’이라고 평가하며 “그는 정치 생애를 바쳐 중미 관계를 위해 걸출한 공헌을 했다”고 했다.
키신저는 불과 4개월 전인 지난 7월 20일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이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그를 만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르며 “중미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진핑은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조전(弔電)에서 “‘키신저’라는 이름은 영원히 중·미 관계와 연결돼 있을 것이고, 키신저 박사는 영원히 중국 인민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미·중 관계 개선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대만은 키신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대만연합보는 “냉혹한 미국 국무장관에서 열성적인 중국 대변인이 됐던 사람”이라면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뜻이 없다고 오판했다”고 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키신저는 ‘답이 없다(insoluble)’는 말로 대만 문제를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마오쩌둥부터 시진핑까지 중국의 역대 지도자를 모두 상대한 유일한 미국인”이라면서도 “키신저 전 장관만큼 뜨거운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 외교관도 드물었다”고 했다. 미국의소리(VOA)는 “키신저는 중국의 대문을 열었지만, 중국 영향력 확대를 위한 대변인이 됐다는 비판 또한 받았다”고 평가했다. 닛케이는 “그가 길을 닦은 미·중 관계의 정상화는 현재 대만 문제의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