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 2일 중국 베이징의 주석 관저에서 헨리 키신저(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마오쩌둥과 악수하고 있다. 키신저는 1971년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고, 두 나라는 1979년에 정식 수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별세한 헨리 키신저(100) 전 미국 국무장관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하루 뒤인 지난 30일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은 “우리는 자주 의견이 달랐다”면서도 키신저 전 장관의 날카로운 지성과 심오한 전략적 초점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백악관이 전직 주요 인사의 부고에 대해 통상 당일에 애도 성명을 발표해온 점을 고려하면, 하루 늦은 키신저 애도 성명은 다소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키신저가 공화당 소속인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보좌했고, 그의 외교 정책에 대해 바이든의 지지 기반인 민주당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바이든의 성명은 키신저가 별세한 뒤 거의 24시간 후에나 나왔다”고 했다.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비판가들이 키신저를 ‘전범’이라고 매도하는 가운데 백악관이 조심스러운 문구를 신중하게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부시가 그린 키신저 -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그린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초상화. /로이터 뉴스1

한편,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일 ‘미국에서 키신저를 뒤이을 후계자가 나오길 바란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키신저 별세는 중·미 관계의 큰 손실이고, ‘제2의 키신저’가 나올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百感交集)한다”고 했다. 중국과 막후에서 접촉하며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조직이나 고위급은 계속해서 존재하겠지만, 키신저처럼 중국 최고위급들과 신뢰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이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0일 “키신저의 추도식은 뉴욕에서 열릴 것이며, 그는 (워싱턴 DC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힐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