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농구공 2개를 사라”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에 도착해 베이징에 거주하는 대만 출신 지인들에게 연락하자 이런 문자 메시지가 돌아왔다. 오는 13일 대만 총통·입법위원(국회의원 격) 선거에서 반중(反中) 성향 민진당이 승리하면 중국이 가만 있지 않을테니 농구공을 튜브 삼아 대만해협을 건너오라는 우스갯소리다. ‘농구공’을 언급한 이유는 대만 출신 린이푸 전 세계은행 부총재가 1976년 본토와의 최전방인 진먼(金門) 섬에서 장교로 근무하다 ‘농구공 귀순’을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농구공 2개를 끼고 2km를 헤엄쳐 인민해방군에 투항했다.
대만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중국 지도부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야권인 친중 국민당과 중립 성향 민중당의 단일화 실패로 기대했던 대만 정권 교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홍콩 싱타오일보는 5일 “(2일까지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가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를 약 3%포인트 차이로 미세하게 앞서고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2000년 총통 선거 때처럼 지지율 변화가 많아 최후의 승자가 누구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차이잉원 현 총통의 임기(2016~2024년) 동안 대(對)대만 영향력 약화를 겪었는데, ‘대만 독립 일꾼’이라고 스스로를 칭했던 라이가 바통을 이어받을 경우 대만과의 관계 악화는 걷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이후 모든 대만 총통이 8년 이상 장기 집권한 점도 중국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반중 민진당의 라이 후보는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만 총통 후보 3인의 TV 토론회에서 사회자가 “대만 주권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국가는 어디인가?”라고 묻자 국민당 허우 후보는 “나는 첫째 대만 독립에 반대하고, 둘째 민주·자유 제도를 고수하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제도)에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민진당 라이 후보는 “대만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라고 답했다. 민중당 커 후보는 “현재 중국은 대만의 위협”이라면서도 “청나라 말기에 서방 열강의 도전을 받자 (아시아에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했고, 쑨원은 혁명을 일으켰는데 (민진당) 당신네처럼 의화단 운동(반외세 운동)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중국 위협에 대한 해결책에서도 민진당과 국민당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민진당 라이 후보는 중국의 군사 위협을 예상하고 적극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침략자의 선의’를 믿지 말고 ‘전쟁 준비를 통한 전쟁 회피(備戰來避戰)’를 추구하자고 한다. 그가 내세운 ‘평화 4대 기둥 행동 방침’에서는 국방, 민주 진영과의 협력 강화 등을 강조한다. 대만에 대한 중국 본토의 영향력 확대를 막는 전략이다. 반면 국민당 허우 후보는 대만 독립을 반대하여 대만해협 현상 유지를 이루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양안 갈등을 해소할 ‘3D 전략’으로 억제(Deterrence)와 더불어 대화(Dialogue)와 긴장 완화(De-escalation)를 내세운다.
중국은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대만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마오쩌둥 탄생 130주년 기념회 연설과 신년사 연설에서 잇따라 조국 통일을 외치며 대만에 경고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1일 정찰풍선 추정 물체 2개가 대만 상공을 가로질렀고, 2일에도 풍선 4개가 실질적인 대만과 중국 본토의 경계선인 대만해협 중앙선을 넘었다. 2일에는 대만해협 근처에서 미군 진입을 방어할 중국의 3호 항공모함 ‘푸젠함’의 첫 해상 시험 운항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반중(민진당)·친중(국민당) 정당 가운데 어느 쪽이 집권해도 대만이 ‘중국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진단한다. 민진당의 친미·독립 노선은 미국과의 밀착을 통한 대만 자위력 강화에 유리하지만, 대만 통일을 노리는 중국과 우발적 군사 충돌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국민당이 집권하면 중국 의존 심화와 국제사회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대만인들은 어느 때보다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 ‘섬세한 외교’를 펼칠 지도자가 당선되길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