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대만 타이난의 유세 현장에서 허우유이 국민당 총통 후보가 지지자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타이난=이벌찬 특파원

대만 총통 선거를 나흘 앞둔 8일 저녁,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의 허우유이 총통 후보가 격전지인 중부 타이중(臺中)에서 유세를 열고 10만 지지자를 집결했다. 그는 “전쟁을 피하자”면서 “대만해협의 안정과 대만의 안전을 가져오고, 세계를 마음 놓게 하겠다”고 소리쳤다. 이날 유세의 주제는 ‘대만 평안, 인민 허우캉(侯康·행복)’으로, 허우캉은 허우유이와 자오사오캉 부총통 후보의 성(姓)을 조합한 단어이기도 하다. 지지자들은 ‘전쟁 말고 평화를(不要戰爭, 要和平)’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와 “정당 교체를 원한다” “(판세를) 뒤집어라(翻)”라고 외쳤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중(反中) 민진당에 오차 범위 내에서 뒤처졌던 국민당이 판세 뒤집기에 나섰다. 지난 7일부터 8일 낮까지 민진당의 ‘철제 표 창고(鐵票倉)’라고 불리는 대만 남부 지역인 가오슝·타이난을 집중 공략했고, 8일 저녁에는 기세를 이어 중부로 올라갔다. 대만연합보는 “선거전이 유례 없이 치열해 마지막까지 승부를 알 수 없다”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침묵을 지켰던 최대 20%의 중도층의 선택이 갈리는 중”이라고 했다.

8일 오후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가 유세 차량에서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이날 유세에서는 ‘총통 취임 선서’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연출했다. 허우유이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오른 손을 들고 “정직하게 전국 인민에게 선서한다. 나, 허우유이는 반드시 (현 민진당 정권의) 권력 남용과 은밀한 공작을 끝내고, 그릇된 관행과 부패에 반대하고, 공개와 투명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했다. 이어 “중화민국(대만)을 수호하고 (중국과) 대화를 이어가며, 안정적으로 양안(중국과 대만) 평화를 유지하며, 전쟁을 피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서 퍼포먼스가 이뤄지는 동안 무대 배경에는 타이베이 총통부(總統府)인 ‘징궈청(經國廳’)의 사진이 띄워졌다.

허우유이는 이날 낮에는 13대의 차량을 동원해 민진당의 텃밭인 타이난 구석구석을 돌았다.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이 탑승한 ‘미디어 전용 차량’은 추가로 올라타는 기자들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 유력 대만 방송사의 기자는 “라이칭더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소폭 앞선 것은 맞지만, 허우의 뒷심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유세 차량이 지날 때마다 길 양 옆에서 국민당 지지자들은 “나에게 허우유이란 총통을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만 깃발을 흔들었다. 타이난 안난구(區)의 사당인 하이웨이차오황궁과 번위안랴오차오싱궁의 참배 현장에는 500~600명의 군중이 모여 들었다. 번위안랴오차오싱궁에는 ‘양안(중국과 대만)의 영원한 평화를 기도한다’는 문구가 적힌 붉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가 8일 오후 대만 타이난의 한 사당에서 참배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인 사당에서 참배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주요 유세 전략이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선거 당일까지 남은 며칠 동안 허우유이는 ‘평화와 발전’을 키워드로 내세워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에 맞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 민진당 정권의 3가지 문제로 ‘대만 독립 추진, 탈(脫)원전, 과도한 인권 정책’을 들며 평화로운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 교체의 필요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특히 총통 당선 시 1년 안에 중국과의 교류를 재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장징궈 카드’도 꺼내들었다. 대만 2대 총통인 장징궈는 장제스 초대 총통의 아들로서 그의 재임 기간에 대만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부패가 적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이후인 1987년 ‘본토 수복’ 계엄법을 폐지하고 대만인의 ‘대륙 여행 자유화’ 조치를 취하며 양안 관계도 개선했다. 허우유이는 7일 장징궈의 손자 장완안 타이베이 시장과 함께 한 유세에서 “장징궈 총통을 볼 낯이 있도록 1월 13일은 이겨야 한다”고 했다. 국민당 주석 주리룬 또한 “(민진당의) 대만 독립 시도는 절대 징궈 선생의 노선이 아니다”라면서 허우유이가 장징궈의 계승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선거일인 13일 장징궈의 타계일이고, 여기에 더해 대만 국사 편찬 기관 국사관(國史館)이 지난달 30일 ‘장징궈 일기’를 출판하면서 대만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지나친 친중 정책으로 젊은 유권자의 반감을 샀던 국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여전히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대화 재개만 외칠 뿐 장기적으로 양안 관계를 대등하게 유지할 방안 제시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성인(중국 본토의 대만 이주자)이 주도한 국민당은 혈연·문화에 있어 중국 대륙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지만, 2014년 대만에서 일어난 해바라기 운동(중국·대만 서비스 무역협정 체결 반대 학생 시위), 2019년 홍콩 시위를 거치면서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반중 정서가 커진 젊은 층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지난달월 3일 민진당 지지자들이 라이칭더 후보 유세장에서 환호하고 있다./뉴시스

허우유이의 라이벌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도 8일 남부 유세 이후 빠르게 북상(北上)하면서 표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라이칭더가 선거 막판에 꺼내든 카드는 ‘중국 선거 개입’이다. 대만의 민진당 계열 신문인 자유시보 등도 연일 중국이 스파이와 가상화폐를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라이칭더는 ‘국회 과반’ 메시지에도 집중하는 모습이다. 7일 라이칭더는 남부 유세에서 허우유이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반면, 친중 성향이 강한 국민당의 거물 한궈위는 6차례 언급했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입법위원 선거에서 야권이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입법위원 후보로 출마하는 한궈위의 입법원장(국회의장) 취임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차이잉원 현 총통도 지난 6일 북부 타오위안과 신베이 유세에서 라이칭더에게 정권을 맡기라고 호소하면서 “총통과 부총통이 운전대를 쥐고 있지만 엔진은 국회”라면서 “입법위원 선거에서 민진당의 과반수 선출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별 선거에서 민진당 투표를 독려해 ‘16번’을 달고 나온 왕이촨 후보를 국회로 보내자는 캠페인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일명 ‘왕이촨 일병 구하기’ 작전이다.

오는 13일 선거를 앞두고 대만에서 국민당과 민진당의 유세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히 선거 전야인 12일, 제3정당인 민중당이 선제적으로 타이베이 총통부 앞 카이다거란대로를 차지한 상황에서 민진당과 국민당은 각각 신베이시 반차오 제2운동장과 반차오 제1운동장에서 나란히 유세를 치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