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만난 A씨가 3개월 전 구입한 중국 국기를 보여주고 있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8일 오후 대만 남부 타이난 융캉구(區)에서 만난 40대 자영업자 A씨는 “선거 이후 혹시 모를 양안(중국과 대만) 전쟁을 대비해 중국 국기를 쟁여놨다”면서 “유사시 중국 국기를 흔들며 ‘조국 만세’를 외치면 화(禍)를 면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의 집에 따라가 보니 거실 TV 장(欌) 안에 한 뭉치의 한뼘 크기 오성홍기가 보관돼 있었다. 3개월 전에 중국 본토에 다녀온 지인을 통해 공수했다고 한다. 그는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것”이라면서 “민주(民主)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전쟁 앞에선 각자도생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조부모는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이 아니라 대만 원주민에 속하는 핑푸족(平埔族·한화 된 평지 원주민)이다.

8일 오후 A씨가 타이난의 자택에서 TV장에 보관한 오성홍기들을 꺼내고 있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둔 대만에선 ‘전쟁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국과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녹색 진영(민진당)’이 친중(親中) ‘청색 진영(국민당)’을 꺾을 경우 중국이 무력통일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특히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중국이 대만을 포위하는 대규모 군사 행동에 나선 이후 일부 대만인들에게 공포가 각인됐다.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은 선거 유세에서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다. 중국과 대화와 교류를 추진하는 국민당만이 전쟁 위험에서 대만을 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8일 오후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허우유이 국민당 총통 후보가 유세 차량에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타이난은 전통적인 민진당 텃밭이지만, 최근 국민당 지지자가 늘고 있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그러나 중국에 대한 공포가 이번 선거에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6년 대만 총통 선거 당시 중국은 ‘제3차 대만해협 위기’로 불리는 미사일 도발로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했지만 대만의 반감만 키웠다. 결국 대만 분리주의자인 리덩후이 후보가 54% 득표율로 당선됐다. 200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도 선거 3일을 앞두고 주룽지 당시 중국 총리가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말해 대만 표심이 반중 민진당으로 향했다. 이 선거에서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는 2위 무소속 쑹추위 후보를 2%포인트 차이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