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만난 A씨가 3개월 전 구입한 중국 국기를 보여주고 있다./타이난=이벌찬 특파원

대만 타이베이의 한 호텔에서 9일 오후 3시 넘어 우자오셰(吳釗燮) 외교부장(장관)이 외신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장내 150여 명의 기자 스마트폰에서 삑삑 ‘경계경보’가 울렸다. 경보 문자는 “중국이 15시(오후 3시) 4분 위성을 발사했고, 이미 (대만) 남부 상공을 비행했으니 국민들은 안전에 주의하라”고 적혀 있었다. 특히 영어 안내 문자에는 ‘위성’이 ‘미사일(missile)’로 표기되어 있어 서방권 기자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우 부장은 “중국이 대만 선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라며 “대만 사람들에게 전쟁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했다.

중국의 이번 대만 상공 위성 발사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린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이 언제든 대만 영공에 관측 위성이 아닌 군용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점을 대만인들에게 각인시키며 반중(反中) 민진당이 아닌 친중(親中) 국민당 선택을 종용한 셈이다. 중국은 작년 10·11·12월에도 대만 상공에 위성을 발사했다.

오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둔 대만에선 ‘전쟁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중국과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녹색 진영(민진당)’이 친중 ‘청색 진영(국민당)’을 꺾을 경우 중국이 무력 통일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반대로 친중 진영이 승리할 경우 자유 진영이 ‘아군’을 잃으며 세계 질서의 균형이 더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2일까지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진당이 국민당을 소폭 앞선 가운데, 최대 20%인 중도층이 요동치고 제3 정당 민중당이 선전하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8일 오후 대만 남부 타이난 융캉구(區)에서 만난 40대 자영업자 A씨는 “선거 이후 혹시 모를 양안(중국과 대만) 전쟁을 대비해 중국 국기를 쟁여놨다”면서 “유사시 이 깃발을 흔들며 ‘조국 만세’를 외치면 화(禍)를 면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의 집에 따라가 보니 거실 TV 장(欌) 안에 본토서 가져왔다는 한 뭉치의 한 뼘 크기 오성홍기가 보관돼 있었다. 지난 3일 타이베이에 도착해 베이징에 거주하는 대만 출신 지인들에게 연락했을 때는 “즉시 농구공 2개를 사라”는 문자 메시지가 돌아왔다. ‘선거에서 반중 성향 민진당이 승리하면 중국이 가만 있지 않을 테니, 농구공을 튜브 삼아 대만해협을 건너오라’는 우스갯소리다. ‘농구공’을 언급한 이유는 대만 출신 린이푸 전 세계은행 부총재가 1976년 본토와의 최전방인 진먼(金門) 섬에서 장교로 근무하다 ‘농구공 귀순’을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8일 대만 타이난의 국민당 유세 현장./타이난=이벌찬 특파원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의 허우유이 총통 후보는 평화를 외치며 중도층을 흡수하려고 한다. 지난 8일 저녁 대만의 선거 격전지인 중부 타이중(臺中)에서 그는 “전쟁을 피하자”면서 “대만해협의 안정과 대만의 안전을 이뤄 세계를 마음 놓게 하겠다”고 소리쳤다. 이날 10만 명의 인파 중 상당수는 ‘전쟁 말고 평화를(不要戰爭, 要和平)’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나왔다.

반면 라이칭더 민진당 총통 후보는 9일 타이베이에서 개최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대만은 이미 주권 독립한 국가이고, 양안 평화·발전은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라면서 수위 높은 대만 독립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매번 대만 선거에 개입하려 했지만, 이번이 가장 심각하다”면서 “대안(對岸·중국)은 ‘전쟁과 평화’라는 프레임으로 (대만) 민주 선거에 영향을 끼쳐 친중 정권을 건립하고자 한다”고 비판했다. 또 “대만은 평화에 대해 이상은 갖고 있지만 환상은 없다”면서 “주권 없는 평화는 홍콩과 같은 가짜 평화”라고 했다.

한편 중국에 대한 ‘공포’가 이번 총통 선거에서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1996년 선거를 앞두고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지만 오히려 중국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추구했던 국민당 리덩후이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0년에는 선거 3일을 앞두고 주룽지 당시 중국 총리가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말하자 대만 표심이 반중 민진당으로 향했다. 혼전 양상이던 당시 선거에서 민진당 천수이볜은 무소속 후보였던 쑹추위를 2.5%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공식 석상에서 잇따라 대만 통일 의지를 천명했지만, 대만에 대한 경제·정치적 압박 수단이 다양하고 미국의 견제가 거센 만큼 무력 카드를 즉각적으로 쓰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