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라이칭더 대만 민진당 총통 후보가 신베이 유세 현장에서 대만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라이칭더(賴淸德·65)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신(新)공급망 안보 대화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라이칭더는 신베이시 투청구(區)에서 차량 유세를 시작하기 직전 10분 동안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진당 관계자는 “라이칭더 후보가 선거 운동 기간에 한국에 대한 특정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라이칭더는 ‘총통에 당선되면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본지 질문에 “대만과 한국은 민주·자유·인권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요한 친구(朋友)이고 둘 다 전체주의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내가 (총통에) 당선되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관광 교류, 경제·무역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 확대하고, 기후 변화에 공동 대응하겠다”면서 “신 공급망 형성을 위한 안보 대화를 열고, 인도 태평양 보호를 위해 협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대만은 국제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기회가 있다”고 평가했다. 라이칭더의 신공급망 언급은 민주 진영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한국과 대만이 각각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의 최강자인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관리에 대한 질문에는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을 거론했다. 라이칭더는 ‘당신이 당선되면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라 예상하는데, 어떻게 관계를 관리할 것인가’를 묻는 본지에 “양안 의제는 단순히 대만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의 문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북한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의 문제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 “우리는 민주 정의를 원하기에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지역의 평화 안정을 지키길 바란다”고 했다. 또 “대만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국방과 경제를 강화하고 민주 정의의 편에 서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라이칭더는 양안 문제에서 강경한 독립 성향이란 분석이다. 지난달 30일 대만 총통 후보 3인의 TV 토론회에서 “대만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라고 했다. 중국 위협에 대한 해결책에서도 ‘침략자의 선의’를 믿지 말고 ‘전쟁 준비를 통한 전쟁 회피(備戰來避戰)’를 추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평화 4대 기둥 행동 방침’에서는 민주 진영과의 협력 강화를 강조한다.

12일 오전 대만 신베이에서 라이칭더가 유세 시작 전에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신베이=이벌찬 특파원

이날 허우유이 국민당 총통후보 경선 본부는 본지에 “허우유이 후보가 중시하는 외교 지역이야말로 인도·태평양이고, 차이잉원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달리 한국과 일본을 중요하게 본다”면서 “양자 무역·과학 위원회 설립 등을 통해 공급망과 무역, 과학기술, 지속가능 발전 등 영역에서 협력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우방국끼리 공급망 구축)을 지지하며 대만이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을 위해 중요 역할을 맡게 하겠다”면서 “미래에 대만은 한국과 손잡고 핵심 산업 공급망의 안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13일 대만에서는 세계 안보의 결정적 변수가 될 총통 선거가 치러진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의 상징이 된 대만에서 친미(親美) 성향의 집권 여당인 민진당, 친중(親中) 성향의 제1야당인 국민당 후보 중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세와 세계 기술·무역·군사 지형이 바뀔 전망이다. 이 선거 결과에 따라 한반도 주변의 안보 환경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 지난 2일까지 공개된 여론조사에선 정권 재창출에 도전하는 라이칭더가 친중 성향 허우유이를 오차 범위 이내인 3~5%포인트 앞서며 선두를 지켰다. 대만 전문가들은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는 민진당, 20%는 국민당을 지지하는 ‘콘크리트 층’으로 보고 있고, 청년 투표율과 중립 성향 제3정당인 민중당 지지자들의 표심이 승자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