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치러진 대만 선거에서 라이칭더와 함께 최고의 승자는 기적적인 득표율을 기록한 제3정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다. 청년층과 중도층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은 그가 반(反)민진당 표를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와 양분한 것이 라이칭더의 승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날 선거에서 라이칭더는 40.0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진당 콘크리트층’만 챙긴 반면, 커원저는 정치 전문가들의 예상 득표율인 17~20%를 훌쩍 뛰어넘는 26.46%를 기록했다.
커원저는 명문대인 대만대 의대 출신으로 2019년 7월 민중당을 설립했다. 의사 경력이 길어 ‘민중당 주석’보다 ‘커 의사’로 불리곤 한다.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인공장기 분야를 연구했다. 아내도 산부인과 의사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2014·2018년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다. 2019년 국민당과 민진당의 기존 정치를 탈피하고 신정치를 추구하는 민중당을 창당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친중 국민당의 허우유이와 후보 단일화를 시도했다가 무산되자 독자 출마했다. 민진당의 노선에 동조하다가도, 국민당과 총통 후보 단일화 직전까지 가는 등의 행보에 대해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의사 출신이고 정치 행보에서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비슷한 점이 많아 ‘대만의 안철수’라고도 불린다.
커원저는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과 국민당에 실망한 민심을 공략했다. 청렴·민생을 내세우면서 양안 문제에서는 중국에 우호적인 국민당, 외교 노선에서는 민주 진영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민진당의 입장을 취했다. 청년들의 최고 관심사인 높은 집값·저임금·저출산·취업난 등을 유세 때마다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그의 유세 현장에는 민진당과 국민당 유세에서 볼 수 없었던 젊은이들로 바글바글했다. 인기의 실체는 선거 전야인 타이베이 유세 현장에서 입증됐다. 3당 유세 가운데 가장 많은 35만 명이 현장에 집결했고, 인터넷 생중계도 32만 명이 시청했다.
커원저의 성공 뒤에는 강력한 청년 지지층 ‘새싹 부대’가 있다. 2030이 주축인 이들은 대만의 새로운 정치의 새싹이 되겠다는 취지로 새싹 모양의 머리 장식을 꽂고 커원저를 열렬히 지지했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대만 기자들은 “대만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고향(거주 등록지)에서 투표해야 하기 때문에 민중당의 높은 득표율은 청년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투표에 임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정치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그림은 막판에 정권 교체를 위해 민중당 지지자들이 국민당으로 이탈하는 것이었다. 민진당의 ‘콘크리트층’은 전체 유권자의 40% 수준이기 때문에 민중당이 20%의 지지율을 넘기면 국민당은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중당 지지자들의 이탈은 일어나지 않고, 지난 2월까지 발표됐던 주요 여론조사에서 기록한 지지율보다 높은 득표율이 나왔다.
대만 정계에선 커원저가 총통 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만큼 대만 정치의 세대교체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커원저는 라이칭더 정권에서 부총리 격인 행정원 부원장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캐스팅보터인 민중당의 수장인 만큼 향후 국회에서 청년들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대변하며 존재감을 키울 전망이다. 다만 대만의 정치 지형상 양당 체제를 뒤흔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커원저가 민진당의 독주를 견제할 카드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위협을 가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