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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4일 중국 허난성 정부가 발표한 지역총생산(GDP) 통계가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성 정부는 “허난성 2023년 GDP가 5조9132억3900만 위안(약 1090조원)으로 그 전해보다 4.1% 성장했다”고 밝혔는데요.
작년 초 허난성이 발표한 2022년 GDP를 보니 6조1345억1000만 위안(약 1130조원)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성장률은 -3.6%가 맞겠죠. 궁색해진 허난성 정부는 “작년 GDP 통계를 검증해보니, 2022년 GDP는 (애초 발표와 달리) 5조8220억1300만 위안으로 확인됐다”고 했습니다. 3100억 위안(약 57조1200억원)이나 부풀려졌다는 거죠.
이런 고무줄식 통계는 중국 중앙정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들쭉날쭉 고무줄 통계
중국 국가통계국은 1월17일 “작년 중국 경제가 5.2% 성장했다”고 발표했는데, 외신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이에요. 전체 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투자가 -9.6%를 기록했고, 수출입도 0.2% 증가에 그쳤는데, 이런 성장률이 가능하냐는 겁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 중국의 월별 철강 생산량 통계를 예로 들었어요. 철강 생산량은 작년 7월 동기 대비 11.5% 늘어났을 정도로 호조였는데, 12월에는 갑자기 -14.8%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2017년 이후 월별로는 가장 저조한 수치라고 해요.
FT는 작년 철강생산량을 2022년과 비슷한 10억톤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것으로 봤습니다. BMO 캐피털 마켓의 콜린 해밀턴 분석가는 “이런 수치는 믿을 수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라면서 “정부 목표치에 맞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수치를 축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보도 속지 않을 수치 조작”
지난 수년간 국가통계국이 발표해온 투자 통계도 이상한 대목이 적잖아요. 국가통계국은 “작년 고정자산투자 규모가 50조3036억 위안으로 2022년보다 3.0% 성장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초 발표한 2022년 고정자산투자 규모는 57조2138억원이었어요. 7조 위안 가까이 줄었는데 3.0% 성장했다고 하니 뭐가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였어요. 2019년 고정자산투자는 55조1478억 위안으로 2018년보다 5.4% 증가했다고 했는데, 2018년 발표한 고정자산투자 규모는 63조5636억 위안이었습니다. 8조 위안 넘게 줄었는데, 버젓이 증가했다고 발표한 거죠. 중국 출신 재미평론가 차이션쿤은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아무리 바보라 해도 이런 수치를 내놓고 자기를 속이고 국민을 속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국가통계국은 연초 청년실업률 통계 조작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죠. 작년 6월 청년실업률이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월별 통계 발표를 중단했다가, 6개월 만에 다시 발표를 재개하면서 작년 12월 청년실업률이 14.9%로 대폭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실업률 조사 대상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숫자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죠. 한 중국 경제학자는 “숫자 조작한다고 청년 실업자가 줄어드느냐”고 한탄했습니다.
◇실제 성장률 1.5~4.6% 추정
글로벌 투자은행과 분석기관들은 중국의 작년 성장률이 공식 발표(5.2%)보다 크게 낮을 것으로 봐요. 미국 컨설팅업체 로디움 그룹은 작년 말 보고서에서 “2023년 실제 성장률은 1.5%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예상보다 낮은 소비 증가율, 무역수지 흑자 축소, 지방정부 재정 악화 등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 거죠.
런던에 본사를 둔 투자자문기업 TS 롬바르드는 자체 GDP 계산 모델을 돌려본 결과, 작년 중국 성장률은 3.6%보다 조금 낮은 수준일 것으로 추정됐다고 했습니다.
대만 중화경제연구원 왕궈천 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투자와 소비, 수출입 통계 등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10% 정도 수치가 부풀려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5.2%에서 0.52% 포인트를 제외한 4.6% 전후로 본다”고 했어요.
◇“집권 정당성 지키려 통계 조작”
중국 당국이 경제 통계를 조작하는 건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큽니다. 경제 지표가 나빠지면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 집권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거죠. 대만 둥화대학 신경제정책연구센터 천쑹싱 소장은 “통계 조작은 공산당을 지키고, 시진핑 주석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인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도 작년 7월 한 세미나에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중국 GDP나 성장률 통계를 믿지 않는다”면서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신뢰도가 떨어지고 러시아나 파키스탄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리커창 전 총리도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로 있을 당시 주중 미국대사를 만나 “중국 통계는 나도 믿지 않는다”면서 “전력 소비량, 철도화물 운송량, 은행 신규대출 등으로 경기를 판단한다”고 한 적이 있죠. 이코노미스트지가 이를 바탕으로 ‘커창지수’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통계국은 1월22일 ‘중국 공산당 기율 처분 조례’를 개정해 통계 조작을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했어요. 지방정부의 통계 조작을 단속하겠다는 뜻인데, ‘수치 조작은 중앙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제대로 보고하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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