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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정글로 불리는 '다리안 갭(Darien Gap)'을 걷던 한 중국 소녀가 복통으로 쓰러지자 소녀의 아버지가 돌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작년 12월 다리안 갭을 넘어 멕시코 국경으로 들어오는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의 실태를 자세하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작년 한 해 멕시코와 접한 서남부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다 체포된 중국인 숫자가 3만743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2월13일 이런 내용을 담은 불법 이민 관련 자료를 공개했어요. 2년 전인 2021년(689명)의 54배, 2022년(3813명)의 10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중국에서는 작년 한 해 ‘룬(潤)’이라는 말이 대대적으로 유행했어요. 룬의 알파벳 발음 표기는 ‘run’입니다. 도망간다는 뜻이죠. 시진핑 주석 집권 3기 이후 갈수록 강화되는 권위주의 하의 사회 통제, 제로 코로나 해제 이후에도 계속되는 경제난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을 탈출하려는 이들이 줄을 잇는 겁니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95세의 고령인 마오위스(茅于軾)도 중국 공안의 감시에 시달리다 캐나다 이민을 택했다고 해요.

중국 부유층들은 합법적인 투자 이민 등을 통해 북미, 유럽 등의 선진국으로 향합니다. 멕시코 국경을 넘는 이들은 미국 비자 받기가 쉽지 않은 중산층들이 많아요. 최근에는 가까운 일본이 중국인의 새로운 이민지로 각광을 받는다고 합니다.

◇길이 5000km, 한달 이상 소요

멕시코 국경을 통한 중국인들의 불법 이민은 작년에도 간간이 보도가 나왔죠. 콜롬비아·파나마 국경지대에 있는 ‘다리안 갭’이라는 죽음의 정글을 넘는 험난한 코스입니다. 그동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아이티 난민들이 주로 이용해온 루트인데, 작년부터 중국인도 밀려든다고 해요.

중국인들은 태국, 터키 등을 거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에콰도르에 일단 들어가고 나서 현지 밀입국 브로커들에게 수천 달러의 비용을 내고 다리안 갭을 거쳐 멕시코 북쪽 미국 국경지대까지 간다고 합니다. 5000㎞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한 달 이상이 걸린다고 해요. 차량이나 배를 타고 이동하는 구간이 많지만, 다리안 갭처럼 직접 걸어서 건너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범죄 피해를 보거나 독사에 물려 숨지는 이들도 나온다고 하죠. 그런데도 이 루트를 이용해 미국으로 가는 건 중국인에 대한 망명 신청 허가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허가가 나오지 않아도 귀국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중국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해요.

현지를 취재한 뉴욕타임스, 닛케이 아시아 등에 따르면 이곳으로 오는 중국인들은 경제난에 시달리는 중산층 출신이 많다고 합니다. 부동산 임대업자와 판매원, 교사, 중의사, 요리사까지 직업이 다양해요. 나이는 30~40대가 많고, 어린 아이들을 동반하는 경우도 다수라고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는 지하 교회 출신도 있다고 해요. 망명 허가를 받게 되면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차이나타운에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됩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부유층 자산가들은 일본행

괌과 사이판도 미국 입국 루트로 떠오른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괌은 망명 신청이 가능해서 중국인 밀입국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미국령 괌을 대표하는 제임스 모일란 연방 하원의원이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괌 해안으로 밀려드는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대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에 불법 이민 대책 마련을 촉구했을 정도입니다.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방어 거점인 괌의 군사시설에 대한 첩보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인 거죠.

부유층들도 중국을 떠납니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는 작년 10월 보고서에서 “2023년 한해 자산 규모가 100만 달러가 넘는 중국 고액 자산가 1만3500명이 이민을 떠날 것”으로 추정했더군요.

중국 부유층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방 국가를 이민국으로 선호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로 향하는 이들도 많다고 합니다. 일본은 500만엔(약 4500만원) 이상 투자하면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경영관리자 비자를 발급해준다고 해요. 이 비자로 체류하다 나중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선전에 본사를 둔 중국 이민컨설팅업체 오메카그룹에 따르면 2022년 한해 일본 정부는 총 3만1808건의 경영관리자 비자를 발급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을 중국인이 차지했다고 해요. 도쿄, 오사카 등지에 집이나 사무실을 빌려 거주하는 중국 부유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유학이나 일자리를 찾아 입국한 중국인들이 적잖은데, 여기에 부유층 이민자까지 가세하면서 장기 체류 중인 중국인 숫자가 100만명에 이른다고 이 업체는 전했습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이민 붐 수년간 이어질 것”

이민을 떠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시 주석 집권 이후 강화된 사회 통제에 대한 불만도 큰 요인 중 하나입니다. 후진타오 주석 집권기에 어느 정도 허용됐던 표현의 자유가 시 주석 집권 이후에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죠. 시진핑 주석 집권 10년간 중국인 해외 망명 신청자는 100만명에 육박합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한 중국 여성은 미국 방송 기자가 이민 이유를 묻자 “자유를 위해서”라고 했더군요.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민영 경제 압박 등을 비판해온 경제학자 마오위스도 캐나다로 이주한 뒤 “남은 평생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협회의 중국 전문가인 이안 존슨 선임연구원은 닛케이 인터뷰에서 “중국 이민 붐이 앞으로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중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마오위스 부부가 지난 1월 중순 캐나다 벤쿠버 자택에서 마오위스의 95세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마오위스 부부는 작년 말 캐나다로 이주했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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