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이 7일 오전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계기로 개최한 외교부장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신화 연합뉴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장관)은 7일 한반도 상황에 대해 “(긴장 해소의) 근본적인 길은 평화 협상을 재개해 각 당사자, 특히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결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합리적인 우려’란 표현은 한반도 긴장의 원인이 북한이 아닌 미국과 한국에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난해 같은 시기 외교부장 회견에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왕이는 이날 오전 중국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연 회견에서 “한반도 문제는 오랫동안 끌어왔다. 병의 원인(病根)은 분명하다”며 “냉전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평화 메커니즘(구조)을 시종 구축하지 않았고, 근본적으로 안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처방전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 바로 중국이 제시한 쌍궤병진(雙軌竝進·비핵화와 평화 체제 동시 추진) 구상과 단계적·동시적 (해결) 원칙”이라고 했다.

왕이는 “현재 한반도 형세는 날이 갈수록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며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스럽기에 한반도에 다시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도 했다. 또 “누구든 한반도 문제를 핑계로 냉전과 대결로 회귀하는 차(車)를 몰고자 한다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누구든 지역의 평화·안정을 깨면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한반도 문제 입장은 일관되고, 모든 노력은 한반도 지역의 평화·안정과 장치구안(長治久安·사회 질서가 장기간 안정되고 평화가 유지된다)에 집중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급선무는 위협과 압박을 중단하고, 서로 번갈아가며 (긴장 수위를) 높이는 대결의 나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왕이는 미국을 겨냥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이래 중·미 관계 개선에는 확실히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미국의 잘못된 대(對)중국 인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미국이 한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계속해서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대국의 신의를 논할 수 있을까. 미국이 ‘중국’ 두 글자를 들을 때마다 긴장하고 초조해 한다면 대국의 자신감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다. 또 “미국이 만약 밸류체인(value chain·가치 사슬) 위쪽을 계속해서 독점하려 하고 중국은 아래쪽에만 머물게 한다면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주먹이 큰 사람의 말이 법이 되는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중국 탄압에 몰두하면 결국 스스로를 해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왕이의 발언은 1년 전보다는 유화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양회 당시 친강 전 외교부장은 ‘충돌’ ‘재앙’이란 표현을 쓰며 “미국이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왕이는 이날 “우리는 늘 미국과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고 각계 인사와의 우호적 왕래를 추진하여 상호 이해의 다리를 더 많이 놓길 원했다”면서 “분명 두 대국이 이 세계에서 올바르게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중 경쟁의 중간 지대인 유럽연합(EU)을 향해서는 “중국과 유럽은 근본 이익의 충돌이 전혀 없고 지정학적인 전략 갈등도 없다. 양측의 공동 이익이 이견보다 훨씬 크다”면서 전보다 더욱 강력한 우호 메시지를 보냈다.

한편 왕이는 오는 5월 독립 성향 라이칭더 정권이 들어서는 대만에 관해 “대만이 조국으로부터 분리돼 나가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서는 “중국은 팔레스타인 인민이 민족의 합법적 권리를 되찾는 정의로운 일을 흔들림 없이 지지한다”고 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선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이 열릴 수 없다면 오해·오판이 누적돼 더 큰 위기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