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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가 막을 내렸습니다. 양회는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국정 자문 회의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의미하죠.
이번 양회에서 군부 서열 3위인 허웨이둥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군의 ‘가짜 전투력(fake combat capabilities)’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말해 그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옵니다. 그동안 미국에 필적하는 항모,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다고 자랑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을 한 거죠. 중국군 최고위 인사가 공개적으로 이런 얘기를 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최고 군사 기관인 중앙군사위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석을 맡고 있고, 그 아래에 장유샤, 허웨이둥 부주석이 있어요.
시 주석도 전인대 기간에 인민해방군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질적 수준의 전투력(新質戰鬪力)을 갖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군 장비와 훈련 수준이 숙원인 대만 통일을 이뤄내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걸 자인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요.
◇“무기·장비, 군사훈련 모두 결함”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3월 9일 “허웨이둥 부주석이 전인대 군 대표단 회의에서 군 내부의 가짜 전투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디어에 공개한 회의록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는 거죠. 다만, 가짜 전투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 말은 빼고 “군내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결연히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어요.
전문가들은 무기·장비 문제와 전투 훈련 등 두 측면을 지적한 것으로 분석합니다. 중국군 장비 부실 문제는 연초에도 보도가 나온 적이 있죠.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서부 사막지대에 배치된 미사일 액체연료통이 연료가 아니라 물로 채워져 있었고, 핵미사일 지하 격납고는 발사용 덮개가 고장 나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장비 부실은 군 부패가 주요인이에요. 값비싼 액체연료 등을 외부에 팔아 제 주머니를 채우는 지휘관이 많다는 뜻입니다. 표준 성능에 못 미치는 무기·장비를 사들이면서 뒷돈을 받기도 하죠.
중국군은 작년 리상푸 국방장관, 리위차오 로켓군사령관, 우옌성 중국항천과기그룹 회장 등 군 고위층과 국유 방위산업체 고위 인사 등 20여 명을 숙청했습니다.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군부 내 부패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요.
◇군 부패에 발목 잡힌 전투력
중국 공군 장교 출신 장비 전문가 푸첸사오는 “허웨이둥의 언급은 결함이 있는 무기 구매가 군 전투력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술 표준에 미달하고 수치가 조작된 무기·장비가 들어온다면 성능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라트남 국제대학원의 제임스 차 박사도 “최근 드러난 구매 규정 위반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 문제가 중국군의 군사 하드웨어와 전장 전투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고 했어요.
중국 각군 고위 인사들은 이번 양회에서 중국군 무기 개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습니다. 해군 정치위원인 위안화즈 상장(대장)은 ‘네 번째 항모는 핵 추진 항모가 되느냐’는 질문에 “항모 제조에서 기술적 난관은 없다”면서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왕웨이 공군 부사령관도 H-20 스텔스 폭격기 개발에 대해 “자랑하고 흥분할 만한 차세대 폭격기”라면서 “곧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기·장비 구매 과정이 이렇게 허술한데, 이런 장담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시 주석, “새로운 질적 수준 전투력” 주문
가짜 전투력의 또 한 가지 측면은 군사훈련입니다. 제대로 된 훈련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군사훈련이 만연해 있다는 거죠.
SCMP는 “수준에 미달하는 가짜 훈련을 언급한 것”이라면서 “중국군 기관지도 수년 전 야간 훈련을 일몰 시점에 하는 것 등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푸첸사오도 “요구 수준에 못 미치는 가짜 훈련 문제를 지적한 것일 수 있다”면서 “훈련은 실전 수요에 따라 이뤄져야지 보여주기식 쇼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했어요.
시진핑 주석도 3월 7일 인민해방군·무장경찰부대 대표단 전체회의에 참석해 “새로운 질적 수준의 전투력을 최대한 빨리 발전시키라”고 했어요. 정보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전투력 수준을 끌어올리라는 주문입니다.
◇“대만 문제 경거망동 어려울 것”
허웨이둥 부주석이 전 세계의 눈이 쏠리는 양회 기간에 중국군 전투력 문제를 공개 거론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대만 침공에 대한 외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없지 않겠죠.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 무력 통일에 대한 중국의 고심이 더 깊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3월 11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 특히 전쟁 첫해를 지켜보면서 느낀 게 있을 것”이라면서 “대만이나 남중국해 문제에서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된 건 쉽게 무너질 것으로 본 우크라이나가 의외로 강인하게 버텨낸 측면도 있지만, 군내 부패가 러시아군의 발목을 잡았죠. 대만의 저항은 물론, 일본의 지원을 받는 막강한 미군 전력까지 감당해야 하는 만큼, 중국군이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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