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중국 광둥성에서 재닛 옐런(왼쪽) 미 재무부 장관과 회담 직전 악수하고 있는 허리펑(오른쪽) 부총리./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을 찾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6일 광둥성에서 4시간 30분 동안 중국의 ‘경제통’과 회담을 했다. 회담을 가진 이 고위급은 중국의 ‘경제 차르’로 불리는 허리펑(何立峰·69) 부총리였다. 이날 두 사람은 중국의 과잉 생산과 불공정 무역 관행,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무역 조치 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미·중 추가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옐런은 회담 직후 성명을 통해 “중국이 과잉 생산을 유발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미국·중국과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이 내수 침체 상황에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 저가 제품을 해외로 밀어내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수출’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이튿날 옐런은 베이징에서 중국의 이인자인 리창 총리와 만났지만, 주요 의제는 허리펑과 논의를 끝낸 뒤였다.

허리펑은 리창과 함께 중국 경제를 이끄는 ‘투 톱’으로 꼽힌다. 시진핑(71) 중국 국가주석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심복 중의 심복’이며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중화권 매체들은 “허리펑(1955년생)은 리창(1959년생)보다 네 살 많지만, 시진핑은 나이 든 사람(老人) 기용을 즐겨 하기 때문에 차기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 때문에 2027년 중국의 차기 지도부(상무위원 7명 포함한 24명의 정치국원)를 선출할 때 리창이 물러나고 허리펑이나 시자쥔(習家軍·시진핑 파벌) 내 최고 실권자인 딩쉐샹(丁薛祥·서열 6위) 부총리가 자리를 이어받는 시나리오가 제기돼왔다.

최근 중국 경제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가 6일 광둥성 광저우에서 열린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과의 회담에 참석한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3월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내외신 기자 회견장에 리창(오른쪽) 총리, 딩쉐샹(가운데) 부총리, 허리펑 부총리가 차례대로 입장하는 모습. 중화권 매체들은 허리펑에 대해 “리창에 이어 차기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허리펑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심복 중의 심복’으로 통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시진핑이 직접 중국 경제를 챙기며 리창 총리의 영향력이 축소된 가운데, 허리펑이 경제 전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경제에서 시진핑이 ‘두뇌’, 허리펑이 ‘손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구소 마르코폴로에 따르면 허리펑은 중앙금융경제위원회를 비롯해 중국 금융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는 세 조직을 이끌고 있다. 또 시진핑의 의중에 따라 “금융이 실물 경제에 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금융권 부패 척결과 개혁을 주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허리펑이 중국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급들과 사적인 친분도 깊다고 분석했다. 지난해까지 재정부장(장관)을 맡았던 류쿤은 샤먼대 동문이고, 현 재정부장 란포안과도 관계가 긴밀하다. 중국 반독점 규제 사령탑인 뤄원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장은 허리펑이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수장일 때 손발을 맞췄던 사이다.

허리펑의 힘은 시진핑의 총애에서 기인한다. 39년 전 시진핑이 푸젠성에서 근무하기 시작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푸젠방’의 일원이다. 광둥성 싱닝시 출신인 허리펑은 문화혁명이 한창이었던 1973년부터 5년 동안 푸젠성 융딩현의 농장과 수력발전소의 노동자로 일했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2년 후인 1978년, 23세의 나이로 푸젠성 샤먼대학 재정금융학과에 뒤늦게 들어가 석사까지 마쳤다.

1985년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으로 부임한 시진핑을 경제 참모로 모시면서 속 깊은 친분을 쌓았다. 이듬해 시진핑이 현재 중국의 퍼스트레이디이자 당시 인기 가수였던 펑리위안을 소개받았을 때는 적극적으로 결혼(재혼)을 권했다고 한다. 1987년 9월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이후 허리펑은 푸젠성에서 샤먼시 부시장(1992년), 취안저우시 시장(1996년) 등을 거쳤고 샤먼대학에서 재정학 박사 학위(1998년)도 취득했다. 2000년엔 성도(省都)인 푸저우시 서기에 오르면서 푸젠성 성장을 맡고 있던 시진핑과 12년 만에 다시 만나 3년여 동안 호흡을 맞췄다.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직후 중국 거시 경제를 담당하는 발개위 부주임(2014년)과 주임(2017년)에 차례로 오르며 중국 경제를 주무르는 핵심 인물이 됐다. 시진핑 3기 경제 정책을 규정 짓는 ‘14차 5개년 계획’ 작성을 주도했고, 시진핑의 해외 경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담당했다. 발개위 산하에 시진핑사상연구소를 설치해 시 주석의 통치 철학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2022년 10월에는 중국 지도부의 일원인 정치국원(24명)으로 승진했고, 작년 3월 경제 담당 부총리에 오른 후 중국의 대미 경제 정책 등 경제 전반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푸젠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고향인 푸젠성에서 지연을 맺은 고위급 인사들을 지칭하는 말. 시진핑은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샤먼·닝더·푸저우 등 푸젠성 일대에서 17년 6개월 동안 근무했고, 푸젠성 성장도 지냈다. “푸젠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최근 중국 경제를 이끄는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가 대표적인 푸젠방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