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피습 사건으로 선전일본인학교 5학년 남학생이 숨진 9월19일 한 여성이 이 학교 정문에 조화를 가져다 놓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광둥성 선전에서 9월18일 현지 일본학교에 다니는 초등학교 5학년 일본인 남학생(10)이 40대 중국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 중일관계가 급류를 타고 있습니다. 마침 이날은 중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만주사변 93주년이었죠.

3개월 전인 지난 6월에도 장쑤성 쑤저우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일본인 남자 아이와 아이 어머니가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6월 초순에는 지린시에서 미국인 대학강사 4명이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다치기도 했죠.

중국 국내외에서는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분출된 과도한 민족주의와 무분별한 대일 보복 선동이 부른 비극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상대로 잔혹하게 흉기를 휘둘러 “의화단 운동이 부활했다”는 말까지 나와요.

이번 사건은 가뜩이나 해외투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시작된 일본 기업의 중국 철수에 가속이 붙고, 외국인의 중국 관광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여요.

◇중국서도 “잔혹한 살육” 비판 쏟아져

사건은 9월18일 오전 7시55분쯤 선전시 난산구 선전일본인학교 부근에서 발생했습니다. 등교하던 5학년 학생에 다가간 종(鍾)모라는 44세 중국인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다고 해요.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아이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다음날 새벽 숨졌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일본인, 어머니는 중국인인 것으로 전해졌어요.

쑤저우 사건도 하굣길 유치원생이 대상이었습니다. 6월24일 오후 4시쯤 유치원생들 태운 통학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해 아이가 내리는 틈을 타 저우(周)모라는 52세 남자가 아이의 어머니와 아이에게 흉기를 휘둘렀어요. 차량 안내원인 중국인 여성 후여우핑(54)이 이를 막아섰다가 흉기에 찔려 숨졌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 어머니와 아이는 목숨을 건졌어요.

무고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중국 내에서도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선전일본인학교 정문에도 숨진 아이를 애도하는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어요.

정법대 천비 교수와 베이징대 자오훙 교수는 9월21일 소셜미디어 웨이신의 한 법률포럼에 올린 글에서 “미친 듯한 포퓰리즘과 이성을 상실한 반일 복수 교육이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런 살육과 잔혹 행위는 문명사회에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애국을 기치로 내건 폭력 선동을 더는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9월21일 정법대 천비 교수와 베이징대 자오훙 교수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신에 올린 '우리는 죽어간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는 제목의 글. 중국 내 반일 폭력 선동을 방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이 글은 이후 삭제됐다. /X(옛 트위터) 캡처

◇당 간부 “일본인 죽이는 게 우리의 기율”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을 단순 형사사건이라면서 축소에 급급한 모습이에요. 외교부 린젠 대변인은 “애통한 일이지만 이런 사건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외교부장도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은 이 사건을 정치화하거나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런 말이 무색하게 두 사건을 둘러싸고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여전히 반일 복수를 부추기는 글이 쏟아집니다. 범인들을 ‘항일 영웅’으로 추켜세우는 댓글도 있더군요.

쓰촨성 농촌에너지발전센터 부주임이면서 간쯔주 신룽현 부현장을 겸하는 황루이(黃如一·41)는 웨이신 댓글에서 “어린 아이 하나 죽인 게 무슨 큰일이냐. 수백명씩 죽여도 된다” “무고한 아이를 살육한 게 아니라 일본인을 죽인 거다” “우리의 기율은 일본인을 죽이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쓰촨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공산당의 엘리트 중간 간부라고 해요.

중국 당국은 뒤늦게 반일 댓글 검열에 나섰습니다. 포털사이트 텅쉰, 바이두와 동영상 플랫폼 ‘틱톡’, ‘콰어서우’ 등은 “중일 대립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각각 수백건의 글을 지우고, 계정을 삭제하는 조처를 했다고 밝혔어요.

황루이 쓰촨성 농촌에너지발전센터 부주임(왼쪽)이 선전일본인학교 초등생 피살사건과 관련해 소셜미디어 웨이신에 올린 댓글(오른쪽). 그는 '중국인의 기율은 일본인을 죽이는 것이다'(붉은 상자 안)고 썼다. 쓰촨성은 황 부주임의 글을 확인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바이두, 웨이보

◇일본 자위대 함정, 대만해협 첫 항해

일본은 외교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쓰게 요시후미 외무성 부대신이 23일 베이징에서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중국 내 일본인의 안전과 소셜미디어 내 근거 없는 반일 선동을 단속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간 가마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도 왕이 외교부장에게 사건 원인에 대한 해명과 안전 조치 등을 요구했습니다.

9월25일에는 해상 자위대 호위함 사자나미함이 호주, 뉴질랜드 함정과 함께 대만해협을 항해했어요. 자위대 함정이 대만해협을 항해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중국 정부는 수세에 처한 모습이 역력해요. 쑤저우 사건은 이미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고 일본 정부가 거듭 공개를 요청하는데도 범행 동기를 계속 숨기고 있습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기로 하는 등 대일 유화책을 내놓고 있지만, 국면 전환이 쉽지 않을 전망이에요.

일본 해상자위대의 만재배수량 6300톤급 호위함 사자나미함. 사자나미함은 9월25일 사상 처음으로 대만해협을 10시간 동안 항해했다. /일본 국방성

◇일본 기업, 중국 철수 가속 전망

일본 기업들은 현지 주재원과 가족의 귀국을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파나소닉은 일시 귀국하려는 주재원과 가족의 귀국 비용을 제공하고 있고, 도시바와 도요타는 현지 주재원에게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는 통지문을 보냈다고 해요.

한때 15만명에 이르렀던 중국 거주 일본인은 현재 10만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지난 3년간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인도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긴 일본 기업도 2000개에 가깝다고 하죠. 미쓰비시, 혼다, 브리지스톤 등이 줄줄이 중국 내 공장을 줄이거나 폐쇄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일본 기업의 중국 철수는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여요. 가나스기 겐지 주중일본대사는 24일 다롄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선전 사건은 양국관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면서 “일본 기업의 대중 비즈니스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 중인 가마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이 9월2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국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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