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스프래틀리군도 영유권을 놓고 필리핀과 충돌했던 중국이 이번에는 무대를 남쪽 인도네시아로 옮겼습니다. 4400t급 대형 해경선을 인도네시아 배타적 경제수역(EEZ)인 북나투나해에 보내 이곳에서 진행 중인 해저 탐사 작업을 방해하다 인도네시아 해경 경비함과 해군 호위함에 쫓겨났다고 해요. 중국 외교부는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중국 관할 해역에서 일상적인 순찰 활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대부분 포함하는 구단선을 그어놓고 그 안이 모두 중국 관할이라고 주장하죠. 그러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6년 이 같은 중국의 주장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북나투나해는 중국 남단 하이난다오에서 남쪽으로 1500km나 떨어진 곳이에요.
인도네시아는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 재임기인 2016년 나투나제도에 F-16 전투기와 군함을 배치하는 등 영토 문제와 관련해 강경 대응을 유지해왔습니다. 중국 해경선의 이번 행보는 새로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도 이런 대응 태세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시험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와요.
◇인니 EEZ 진입해 “우리 해역” 주장
중국 해경선은 프라보워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 날인 10월21일 이 해역에 진입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해경이 무선망을 통해 나가라고 요구하자, 중국 해경선은 “이곳은 우리 관할해역”이라고 주장했다고 인도네시아 해경은 밝혔어요. 결국 해경 경비함이 중국 해경선을 밀어냈다고 합니다.
이 해경선은 사흘 뒤인 24일 다시 이 해역에 나타났다고 해요. 필리핀 해경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중국 해경 남해분국 소속 해안경비함 5402호였습니다. 배수량 4400t급 함정으로 76밀리 함포와 고정식 기관총 2정으로 무장했고, 구조용 헬기도 탑재할 수 있는 대형함정이에요.
중국 해경선은 인도네시아 국유 석유회사 페르타미나가 물리탐사선을 동원해 진행 중인 해저 탐사 작업을 방해하다 출동한 인도네시아 해경선 1척과 호위함 1척에 밀려 쫓겨났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해양안전국은 “중국 해경선이 페르타미나의 조사 활동을 방해해 쫓아냈다”면서 “인도네시아의 주권을 굳게 지킬 것”이라고 했어요.
◇전임 대통령, 군사 대응으로 분쟁지역화 차단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섬 서북쪽에 있는 북나투나해는 황금 어장이자 천연가스가 풍부한 자원의 보고입니다. 해역 일부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구단선과 겹치는 곳이에요. 그러다 보니 중국 어선들이 수시로 출몰해 불법 조업을 벌입니다.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은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 판결이 나온 직후 이곳에 F-16 전투기를 배치하고 해군 기지를 대폭 확장했어요. 중국 불법 조업 어선이 법 집행에 불복하면 발포하고 침몰시키기도 했습니다. 2019년12월에는 중국 어선들이 자국 순시선의 호위를 받으며 이곳에 들어와 조업을 한 일이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국 대사를 초치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F-16 전투기 편대를 보내 무력시위를 벌였습니다. 2020년7월에는 해군 함정 26척과 공군기 19대를 동원해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인 적도 있어요. 이 해역을 분쟁지역화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조기에 차단하고 나선 겁니다.
북나투나해에 들어간 중국 해경선 5402호는 남중국해 분쟁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에요. 2020년 말레이시아가 루코니아 암초 인근에서 석유 탐사 작업을 할 때도 이 함정이 출동했고, 같은 해 베트남의 남중국해 석유 탐사를 방해했을 때도 방해 작업을 주도했습니다. 배수량 4400t으로 동남아 국가들이 보유한 해군 함정보다 덩치가 큰 데다 무장까지 하고 있어서 버티면 쫓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해요. 돌격대장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강경 기조 계속되나” 살핀 듯
중국의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새로 취임한 프라보워 대통령 정부도 전임 대통령 때처럼 강경 대응을 계속할 것인지를 물어본 겁니다. 마침 샤프리 삼소딘 신임 국방장관은 24일 취임 축하 인사차 방문한 왕루퉁 주인도네시아 중국대사와 면담했습니다. 그는 이날 일어난 중국 해경선 진입 사건은 언급하지 않은 채 “합동군사훈련을 포함한 국방 분야의 협력관계를 희망한다”고만 했어요. 주권 수호를 공언한 인도네시아 해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중국 관영매체는 이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정체가 불분명한 일부 소셜미디어 매체들이 등장해 “해경선 5402호는 쫓겨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곳에 있다”고 주장했더군요.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중국 해경선은 국제법과 국내법에 근거해 중국 관할 해역에서 통상적인 순찰 활동을 했다”면서 “인도네시아 측과 소통하고 협상하면서 양국 해상 문제를 원만하게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