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통계국이 12월16일 발표한 지난 11월 소비 통계가 큰 충격을 줬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의 소비증가율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4.1%, -13.5%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어요. 최대 쇼핑 시즌인 광군제(11월11일)가 있었고 정부가 잇달아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는데도 ‘소비 쇼크’라고 할 정도의 수치가 나왔습니다.
중국 전체 11월 소비증가율은 3.0%로 지난 10월(4.8%)보다 낮았지만 감소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중국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화장품(-26.4%), 통신기기(-7.7%), 석유제품(-7.1%), 금은보석류(-5.9%) 등이 하락폭이 컸어요.
베이징과 상하이의 소비 폭락은 외자 철수가 주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작년 7월 반간첩법 시행으로 외국 기업과 금융회사가 줄줄이 철수하면서 고임금 일자리가 줄고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소비 다운그레이드(消費降級)’가 본격화된다는 거죠.
◇베이징·상하이·홍콩 나란히 소비 급감
베이징과 상하이의 작년 소비증가율은 각각 11.5%, 12.6%로 전국 평균(9.2%)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올 연초부터 소비가 얼어붙기 시작했어요. 4월까지 감소세였던 소비증가율은 5월 상승세로 돌아섰지만, 6월부터 다시 내림세가 시작됐습니다. 10월 4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가 11월 들어 다시 폭락했어요. 올해 내내 감소세였지만, 감소폭이 두자릿수에 이른 건 처음이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올해 1~11월 소비 증가율도 각각 -2.8%, -3.1%로 전국 평균(3.5%)보다 훨씬 떨어져요. 다른 지방 대도시도 소비증가율이 높진 않지만 두 도시만큼 나쁘진 않습니다. 대륙 밖의 홍콩이 두 도시와 비슷한 소비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요.
중국 내에서는 광군제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광군제 한 달 전부터 할인 행사를 하다 보니 10월에 앞당겨 소비를 했다는 거죠. 하지만 두 달치를 합산해도 소비 감소폭이 적잖습니다.
◇반간첩법 시행 이후 외자 철수가 주요인
전문가들은 외국계 기업과 외국 자본의 대대적인 철수를 주요인으로 봐요. 중국 내 외자 기업과 외국 자본은 반간첩법 도입과 미중 경쟁 등으로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자 작년부터 줄줄이 보따리를 싸고 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외국 기업과 금융회사의 중국 내 본사가 집중된 곳이죠. 외국계 기업이 떠나면 그곳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임직원도 함께 철수합니다. 현지에서 고용한 중국인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겠죠. 베이징대 신구조경제학연구원의 선훙(沈鴻) 연구원은 싱가포르 연합조보 인터뷰에서 “철수하는 외국인 직원, 해고된 외자 기업 중국인 직원은 모두 고소득 군에 속한다”면서 “이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소비가 크게 줄었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거품 붕괴의 영향도 없지 않아요. 베이징과 상하이는 중국 내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에 속해 거품 붕괴의 여파가 그만큼 크다는 겁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정부기관이나 국영기업,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들도 월급과 보너스가 큰 폭으로 줄었다고 해요.
◇뜬금없이 ‘무비자 입국’ 발표한 이유
소비 성향이 강한 젊은 층이 베이징, 상하이를 떠나는 것도 소비 감소의 한 요인입니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월세가 비싸 일자리를 잃으면 거주 자체가 쉽지 않아요. 노무라증권 중국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루팅은 “대도시 일자리가 줄다 보니 젊은 층이 베이징, 상하이를 떠나 다른 도시에서 기회를 찾는 추세”라고 했습니다.
업종별 통계를 보면 베이징과 상하이 모두 올 들어 숙박업 불황이 극심한 상황이에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겁니다. 올 들어 9월까지 베이징의 숙박업계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3.4% 감소했고, 이윤은 28.8%나 줄었어요. 같은 기간 상하이의 숙박·음식료업계 매출액도 작년 동기 대비 4.8%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127.4%나 감소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1월 갑자기 한국 등 9국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나선 데는 이런 배경이 있어요.
화장품 소비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도 눈에 띕니다. 경기 침체기에 화장품 소비가 늘어나는 걸 ’립스틱 효과’라고 하죠. 자동차, 가구 같은 값비싼 내구재 대신 값싼 화장품 소비로 기분 전환을 한다는 뜻입니다.
◇불황에도 ‘립스틱 효과’는 없었다
중국도 2021년까지는 이런 립스틱 효과가 있었어요. 코로나 19가 터진 2020년 중국 소비증가율은 -4.0%를 기록했지만, 화장품 소비는 10%가량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부터는 화장품 소비 감소가 전체 소비 감소보다 더 커졌어요. 2022년 중국 소비증가율은 -0.2%였는데, 화장품 소비증가율은 -4.5%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부터 값비싼 외국 브랜드 화장품 수입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값싼 중국산 화장품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해요. 시사주간지 삼련생활주간은 “여성은 자신을 위한 소비뿐 아니라 가정의 소비 지출도 상당 부분 결정한다”면서 “여성들이 소비 다운그레이드를 시작했다는 건 중국의 현재 소비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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