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주력 수송기인 일류신 IL-76 군용 수송기가 지난 4월 북극해 러시아령 알렉산드라섬, 러시아 최북단 공군 기지 나구르스코예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북쪽 2800㎞, 북극점에서 1000㎞ 떨어진 북극해 러시아령 알렉산드라섬. 이곳에 있는 러시아 최북단 공군 기지 나구르스코예에서 최근 활주로 확장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랩스가 찍은 기지 사진을 보면 지난 1년 새 기존 2.5㎞이던 활주로가 1㎞ 더 늘었다. 러시아 국방부는 여기에 더해 이 기지에서 아스팔트를 대체할 빙판 활주로를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플로샤트카(대지)’ 프로젝트다.

최근 군사 전문 매체 ‘더 워 존’은 러시아가 북극권 얼음 위에 고중량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사계절 사용할 수 있는 군용 비행장 건설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프로젝트는 지난 4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착수됐다.

한여름에도 최고 기온이 0도 안팎인 동토(凍土)에서 러시아가 활주로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거운 수송기와 폭격기를 북극권에 배치하고, 그동안 빙하가 녹는 7~9월에 열리는 해상 루트에 주로 의존하던 북극권 물자 보급을 항공으로 사계절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자체 무게만 100t 넘는 항공기들이 이착륙하려면 통상 3㎞ 이상 활주로가 필요하다. 이번 공사로 활주로를 3.5㎞로 늘린 나구르스코예엔 대량의 폭탄을 탑재한 폭격기도 앉을 수 있게 됐다.

빙판 활주로 개발중인 나구르스코예 기지

하지만 척박한 북극권 환경을 감안하면 아스팔트 활주로의 단점은 뚜렷하다. 일반적으로 활주로는 고속도로의 3배 이상 두께로 포장해야 해 공사 기간이 길다. 그런데 북극권 악천후는 활주로를 빨리 마모시키고, 재포장 작업도 여름에만 가능하다. 러시아가 아예 빙판 활주로 연구에 착수한 이유다. 빙판이 단단히 언 경우라면 얼음 표면의 우툴두툴한 돌기들이 마찰력을 높여 항공기의 미끄러짐을 막아준다. 빙판 활주로가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실제 미국·캐나다 등지에선 겨울철에 빙판 활주로를 운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빙판 활주로를 항상 사용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날씨가 조금 풀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빙판 마찰계수가 크게 낮아져 항공기가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 빙판이 녹으면 항공기 하중에 아예 활주로가 붕괴할 우려도 있다. 빙판 활주로를 사계절 운용하기 위해선 빙판이 항상 단단해야 한다.

플로샤트카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는 모스크바 바우만공대에 따르면 빙판 활주로 기술은 특수 화학 시약을 사용해 얼음 결정 구조를 바꿔 빙판을 극도로 경화(硬化)시키는 게 핵심이다. 활주로에 깔아둔 센서로 빙판 온도를 모니터링해 얼음이 녹을 때마다 시약을 뿌려 1년 내내 사용 가능한 단단한 활주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바우만공대의 설명이다.

예브게니 스토로주크 바우만공대 경제·혁신 담당 부총장은 지난달 말 “빙판 활주로가 완성되면 100t 이상의 항공기가 드나들어도 활주로가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주력 일류신 IL-76 군용 수송기(92t)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투폴레프 Tu-95 전략폭격기(90t) 등도 착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지표면 85% 이상이 얼음으로 깔려 있는 이곳에 활주로를 까는 이유는 북극권이 최단(最短) 항공 루트이면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북극 소식에 정통한 노르웨이 바렌츠옵서버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이 나구르스코예 기지에 배치될 경우 투폴레프 Tu-22M3 전략폭격기에 실리면 최대 3000㎞를 빠르게 날아가 북대서양의 미국·유럽 전력을 무력화시켜 북반구 전력 균형을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극권은 러시아가 미국에 압도적으로 앞서 있는 분야다. 미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미국의 북극권 내 공군 기지는 1953년 지어진 그린란드 북부 툴레 기지 1개뿐이다. 러시아는 현재 6개 이상의 북극권 기지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워 존’은 “대지 프로젝트를 달성하면 러시아는 북극권 전역에서 상시적인 항공 전략자산을 운용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