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연합뉴스

“소녀상에 대한 철거 명령이 나와 논란이 커지는 바람에 전쟁 중 유린된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일으키자는 소녀상 설치 목표가 초과 달성됐다.”

독일 베를린 시내에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한정화(58)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13일(현지 시각) 본지 통화에서 “독일인 중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일본 측 만행을 알게 된 사람이 크게 늘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대표는 “일본이 소녀상을 없애기 위해 작심하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는 느낌을 받는다”고도 했다.

미테구의 소녀상은 독일 내 공공장소에는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다. 한 대표는 “3년 전부터 베를린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방안을 구상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행동에 들어갔다”며 “일본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비밀에 부친 채 관공서를 상대로 설치 허가를 받기 위해 뛰어다녔다”고 했다. 허가에는 지역 여론도 반영되기 때문에 꽃가게 주인을 비롯한 인근 상인들도 접촉했다. 또한 독일 현지 여성 단체와 예술인 단체의 조언과 도움도 받아 지난 7월 초 공공장소에 세울 수 있는 예술 작품으로 최종 허가를 받았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 소녀상을 설치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움직인 것이다.

한 대표는 “(소녀상은) 독일 시민들과 함께 세운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민간 차원의 노력”이라고 했다. 그는 “소녀상을 존치하려면 독일 내 여론의 향방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일 간 민족주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며 “앞으로 소녀상 존치를 위해 비문 내용을 수정하라는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당초 취지를 최대한 살리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1978년 서울 연희중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이민을 갔다. 파독 간호사가 된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와 함께 이주했다. 통·번역 일을 하는 그는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를 독일인 교수와 공동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코리아협의회는 1990년 설립돼 한국의 역사·사회에 대한 정보를 독일 사회에 제공하는 한편, 인권 보호 운동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