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취임 15주년을 맞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왼쪽부터 2005년, 2009년, 2013년, 2016년의 모습./AFP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2일 취임 15주년을 맞았다. 16년간 재임한 헬무트 콜(1982~1998년 재임)에 이어 역대 독일 총리 중 둘째로 장수하고 있다. 15년간 3명의 미국 대통령, 4명의 프랑스 대통령, 5명의 영국 총리와 맞상대로 지냈다.

장기 집권에도 메르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달 초 공영 방송 ARD 여론조사에서 메르켈에 대한 지지율은 74%에 달했다. 2015년 이후 최고치였다. 코로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3월 같은 조사에서 지지율이 53%였는데 갈수록 상승세다.

독일인들이 메르켈을 호평하는 이유로는 우선 코로나 사태 선방이 꼽힌다. 21일까지 독일에선 91만여 명이 감염돼 1만4239명이 숨졌다. 피해가 작지 않지만 이웃 나라 프랑스와 비교하면 확진자는 43%, 사망자는 29%에 그친다. 인구가 프랑스보다 1600만명가량 더 많은데도 피해가 적다.

메르켈은 G7(서방 주요 7국) 정상 중에 유일한 이공계 전공자다. 양자역학을 전공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로나 상황에서 ‘과학자 총리’라는 면모가 신뢰감을 줬다. 그는 방역 상황을 설명할 때 감염자 한 명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다른 환자 숫자를 뜻하는 감염재생산지수를 끌어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메르켈은 “나는 물리학자로서 (전문가의) 학문적 조언을 스스로 먼저 적용하는 데 훈련이 돼 있다”고 했다.

분단 시절 동독의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평범한 학자였던 그는 36세이던 1990년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 헬무트 콜 당시 총리가 그를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하면서 ‘콜의 정치적 양녀(養女)’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성 배려용 장관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스스로 성장했다. 2000년 제1야당이던 기민당 대표로 선출된 그는 2005년 총선에서 이겨 정권을 교체했다. 이후 치른 세 차례 총선에서 기민당은 원내 1당 위치를 놓지 않았다.

메르켈은 글로벌 금융 위기, 남유럽 재정 위기, 대규모 난민 이주 사태를 맞아 EU(유럽연합)가 단합하도록 이끌며 ‘유럽의 여제(女帝)’로 불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주 펴낸 자서전 ‘약속의 땅’에서 “메르켈은 신뢰할 수 있고 정직하며 지적으로 정확한 사람”이라고 했다.

메르켈이 독일 경제의 순항을 이끈 것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독일 실업률은 3%로, 사실상 완전 고용을 달성했다. 2019년 독일의 경제 규모(GDP) 대비 국가 부채는 59%로, 프랑스(98%)·영국(85%)보다 눈에 띄게 낮다. 독일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차기 지도자로서 두각을 보이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도 메르켈의 지지율이 높게 유지되는 이유로 꼽힌다.

메르켈은 내년 10월 치르는 총선까지 집권하고 정계 은퇴를 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러면 헬무트 콜과 함께 역대 최장수 독일 총리가 된다. 토르스텐 파스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퇴임 구상을 이미 밝혔기 때문에 메르켈의 방역을 위한 노력은 사심 없는 봉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