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6시 31분 마거릿 키넌(90)씨가 백신을 맞은 것을 시작으로 영국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에 돌입한 세계 최초 국가가 됐다. 그런데 키넌씨보다 네 살 많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백신 순서는 언제 올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윈저궁에서 구세군을 비롯한 자선단체들의 회원, 자원봉사자를 격려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도중 찰스 왕세자 부부와 환담하고 있다. /윈저 AP=연합뉴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가 공개한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따르면 1순위는 요양원 거주자와 직원, 2순위는 80세 이상과 최일선 의료진이다. 3순위는 75세 이상, 4순위는 70세 이상 등으로 나이대별로 순서가 내려가다 50세 이상(10순위), 나머지 인구(11순위)에서 끝난다.

현재 영국 전역 70개 대형병원에서 1순위 중 요양원 직원과 2순위자를 대상으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영하 70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화이자 백신의 특성상 요양원을 직접 찾아 환자들에게 맞히긴 힘들어, 일단 요양원 거주자는 제외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94)과 남편 필립공(99)은 2순위 그룹에 속해 있다.

문제는 같은 그룹 내에서의 우선순위다. 접종 초기인 만큼 각 병원의 하루 최대 투입 가능한 백신은 300회분으로 제한돼 있다. 각 병원은 고위험군부터 차례로 연락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영국 백신 1호 할머니 “가족들과 퇴원합니다” - 9일(현지 시각) 영국 중부 미들랜드의 코번트리 대학병원에서 영국의 코로나 백신 1호 접종자 마거릿 키넌(90·가운데)씨가 딸과 외손자의 손을 쥔 채 퇴원 채비를 하고 있다. 의료진은 전날 키넌씨를 비롯한 백신을 맞은 고령자들을 곧바로 귀가시키지 않고 혹시 모를 이상 반응에 대비해 일정 시간을 병원에 머무르게 했다. /AFP 연합뉴스

같은 2순위자라도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이 먼저다. 영국 예방접종면역공동위원회(JCVI)가 내놓은 지침에 따르면 만성 폐질환, 간질환, 다운증후군, 당뇨병 등을 가진 사람이 위험 그룹으로 판단되며 이들에게 먼저 우선권이 부여된다. 백신 개시 첫날 런던 로열프리병원에서 접종받은 케이 걸웨이(84)씨도 “당뇨병을 앓고 있고 평소 병원을 자주 찾아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백신을 맞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종이나 직업도 고려 요인 중 하나다. JCVI는 “흑인, 아시안과 소수민족의 감염률과 사망률이 더 높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며 “이들에게 더 빨리 예방 접종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직업군 중에선 코로나 노출 위험이 큰 교사, 군인, 운송 종사자, 사법 종사자 등이 우선순위를 갖는다.

기저 질환이 없고, 유색인종이 아니며, 위험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여왕 부부는 순번이 밀릴 수밖에 없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 현지 언론은 여왕 부부가 몇 주 안에 백신을 맞게 될 것이라고 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접종 여부를 공개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로열 패밀리의 진료 기록은 비밀로 유지되고, 필요한 경우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 공개된다. 백신 접종 공개 여부는 여왕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현지 언론은 여왕은 1957년 당시 각각 8세, 6세이던 찰스 왕자와 앤 공주가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받았음을 알리면서 대중의 백신 우려를 덜어준 점을 들며 이번에도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 영국 백신 접종이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백신을 맞을 수 있는 곳이 350개 의료기관으로 확대된다. 맷 행콕 보건 장관은 “크리스마스 전에 400만회분의 백신을 무료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각 도시의 스포츠 경기장, 대형 콘퍼런스홀 등이 대규모 백신 접종 센터로 활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