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이 16개월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에서 예상치 못했던 다크호스가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국방 예산을 놓고 다툼을 벌인 끝에 사퇴했던 피에르 드 빌리에(64)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대통령감으로 주목하는 프랑스인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샤를 드골(1890~1970) 전 대통령이 별세한 지 50년만에 군인이 다시 국가 지도자감으로 부상하고 있어 드골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기관 IFOP이 ’2022년 대선에 드 빌리에 전 합참의장이 출마하면 그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0%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없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직업 군인 출신에 대한 지지율로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조사를 실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2차대전 이후 민주화된 유럽 국가에서 군인이 대통령이나 총리를 맡은 전례는 매우 드물다.
드 빌리에는 생시르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엘리트 군인의 길을 걸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등에 참전했던 야전 지휘관이었다. 그가 대중에 자신을 각인시킨 계기는 마크롱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끝에 사표를 던진 사건이었다. 2017년 마크롱이 취임 이후 첫 예산안을 짜면서 국방예산을 늘리겠다는 당초 약속을 어기고 줄이기로 결정하자 그는 강하게 반발했다.
국방예산 삭감 소식을 들은 드 빌리에가 “내가 그렇게 X같이 되지 않게 만들거야”라며 비속어를 섞어가며 소리를 질렀다는 이야기가 르몽드에 보도됐다. 결국 마크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드 빌리에는 사표를 던지고 군복을 벗었다. 소신 있는 군인이라는 세간의 평이 나왔다.
드 빌리에는 군복을 벗은 이후 저술가로 변신했다. 인생 역정과 마크롱과의 충돌을 그린 첫번째 책 ‘봉사(Servir)’와 리더십에 대한 견해를 담은 두번째 저서 ‘지도자란 무엇인가’를 펴냈다. 각 17만권씩 모두 35만여권이 팔려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군인이 낸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것도 드문 현상이다. 필력이 상당하다는 말이 나왔다. 프랑스인들은 ‘기개 있는 군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지성까지 겸비했구나’라는 식의 호평을 내놓고 있다. 프랑스 언론에는 “전술을 아는 카뮈”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드 빌리에는 최근 세번째 저서를 출간했다. 이를 계기로 일간 르파리지앵은 지난 6일 그를 인터뷰해서 1~3면에 걸쳐 크게 보도했다. 다른 언론들도 앞다퉈 그를 인터뷰하고 있다. ‘드 빌리에는 누구인가'라는 기사들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드 빌리에를 지지하는 이들은 우파이고 중장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좌파에는 지지할만한 인물이 없고, 우파에서는 마크롱이 너무 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드 빌리에를 대안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드 빌리에는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프랑스인들은 권위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이 가볍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당적이 없는 드 빌리에가 실제 출마할 지는 미지수다. 그가 출마하더라도 기성 정치인들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전국적인 지명도도 아직은 부족하다. IFOP 여론조사에서 드 빌리에가 누군지 모른다는 응답자가 38%였다. 다만 언론에 자주 등장하며 얼굴을 내밀고 있고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지지세가 확산되는 추세여서 다음 대선에서 다크호스가 될만한 잠재력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