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파리 시내 루브르박물관 옆 센강변. 겨울 햇볕이 강변을 따라 줄지어 선 헌책 노점 위를 내리쬐고 있었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헌책을 팔고 있는 다비드 노섹(67)씨에게 ‘오늘 몇 권 팔았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노섹씨는 “여기서는 한권도 못 팔았다”고 했다.
노섹씨처럼 센강 변에서 고풍스런 헌책 노점을 운영하는 사람을 ‘부키니스트(bouquiniste)’라고 부른다. 헌책이라는 뜻의 ‘부캥(bouquin)’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16세기에 등장해 약 500년의 명맥을 잇고 있는 부키니스트는 센강 주변에서 2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800여개의 매대를 운영한다.
부키니스트들의 헌책 매대는 오랜 세월 파리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문화 유산의 역할을 해왔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뚝 끊기면서 부키니스트들은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 평소 월 2500유로(약 336만원)를 벌었다는 노섹씨는 수입이 8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
궁리 끝에 노섹씨가 주도해 부키니스트 50명이 뭉쳐 지난 10월 온라인몰을 개설했다. 젊은 시절 음향 기술자였던 노섹씨가 앞장섰다. 가장 디지털 세계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온라인 비즈니스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온라인몰 이름은 ‘파리의 부키니스트(https://bouquinistesdeparis.com)’다. 헌책은 물론이고 포스터며 오래된 문헌, 사진집, 유명 인사의 사인 등을 판매한다. 일간 르파리지앵은 이 온라인몰을 가리켜 “이건 하나의 혁명”이라고 했다.
노섹씨에 따르면, 개설 초기에는 하루 방문자가 150명 정도였지만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까지 513명이 방문했다고 했다. “우리가 온라인몰이랑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동 금지령 때문에 이곳까지 못 오는 고객들이 집으로 책을 배송받고 고맙다고 하니까 진작 (온라인몰을) 만들었어야 했나 보다 싶어요. 오늘 매대에서는 한권도 못 팔았지만 온라인에서는 3권이나 팔았죠.”
다만 온라인몰이 전통과 자부심에 어긋난다며 참여하지 않는 부키니스트들도 있다고 했다. 온라인몰을 이용하면 센강 변에 찾아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옛 책을 펼쳐보고 사는 재미를 느낄 수는 없다.
노섹씨는 봉쇄령이 끝난 이후에도 유동 인구가 적어 매대를 펼쳐놓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가 될까 말까 라고 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딱 끊겼다. 그는 “온라인몰이 있더라도 매대를 찾아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사람들을 다시 반기고 싶다”며 “한국 관광객들이 그립다”고 했다.
부키니스트들의 매대는 길이 2m, 폭 75㎝, 높이 60㎝로 통일돼 있다. 색깔은 모두 청록색이다. 파리시가 시내 디자인 관점으로 통일시킨 것이다. 노섹씨는 “온라인으로 팔든 센강변에서 팔든 책의 영혼은 종이 안에 담겨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조금 참고 기다리다 보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다시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로 예전처럼 북적거릴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노섹씨는 주섬주섬 매대를 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