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도시 전체가 봉쇄된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여성복 디자이너 박소희(25)씨는 요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미국 래퍼 카디비,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 마일리 사이러스 등 세계 최정상 스타들이 앞다퉈 그가 만든 옷을 찾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미 음악 전문지 빌보드에서 ‘올해의 여가수’로 뽑힌 카디비가 화보를 위해 ‘찜'한 옷이 박씨의 작품. 요즘엔 아리아나 그란데의 드레스를 만들고 있다는 박씨를 전화로 만났다.
“카디비가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언급했더라고요! 믿기시나요?”
수화기 속 목소리는 영락없는 20대 소녀였다. 반년 전만 해도 런던의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CSM)의 평범한 학생이던 그의 인생을 바꾼 건 지난해 7월 공개한 그의 졸업 작품이다. 미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안 코완이 2021년 봄·여름 시즌을 위한 뉴욕패션위크 작업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패션지 보그는 올해 주목해야 할 패션 학교 졸업생 10명 중 한 명으로 박씨를 꼽았다. 영국 유명 패션 잡지인 러브 매거진은 ‘박소희가 졸업 작품으로 인스타그램을 파괴한 방법’을 제목으로 그의 작품을 표지에 실었다. 이름을 지을 새도 없이 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디 ‘MISS SOHEE’가 그대로 브랜드명이 됐다.
박씨는 “졸업 쇼를 앞두고 터진 코로나를 이 악물고 버틴 게 기회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특히 옷 만드는 디자이너에겐 끔찍한 악재였다. 봉쇄 기간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는 바람에 당장 옷감을 구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직물 가게와 화상 통화를 하며 옷감을 골라 1~2주 뒤 겨우 배송을 받으면, 생각했던 재질이나 색감과 달라 반품하고 다시 주문하길 반복했다. 결국 평소보다 시간을 서너 배 더 썼고, 7월에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졸업 쇼가 취소됐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작품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매일같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엄마와 ‘이대론 못 간다'고 싸우며 고집을 부렸는데, 버티길 잘한 것 같아요. 이번에 5년짜리 글로벌 탤런트 비자도 받았죠.”
서울 목동에서 인문계고를 졸업한 뒤 스무 살에 유학길에 올랐다. 동화작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고교 때 수학책에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께 혼난 게 여러 번”일 만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패션에 몸담는 것에 대해선 부모님 반대가 컸다. 국제적으로도 알아주는 CSM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입학 전까진 셔츠 하나도 만들 줄 몰랐어요. 그런데도 옷을 만들어오라는 과제가 떨어지니 맨날 유튜브를 보면서 옷 만드는 법을 독학했죠.” 그는 “어떤 교수도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 주진 않지만, 학생들을 극한으로 내몰아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드는 시스템이기에 그 안에서 스스로 자라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만든 옷은 꽃이 활짝 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많다. 졸업 작품 컬렉션 이름도 ‘만개한 소녀(The girl in full bloom)’다. “우리나라 민화 속 커다란 꽃봉오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한복을 재해석한 작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우리나라 한복처럼 색깔을 자유자재로 잘 쓰는 옷이 없어요. 그걸 저만의 느낌으로 해석해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