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스 분(Boone)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석이코노미스트/OECD

“한국은 은퇴한 50대를 대상으로 직업 재교육을 강화하고, 기혼 여성의 고용률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로랑스 분(Boone·5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이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려면 고용시장 개혁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프랑스 국적인 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런던비즈니스스쿨(LBS)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메릴린치, 바클레이스 등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를 거쳤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재임 시절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 후임으로 엘리제궁 경제보좌관(2014~2016)을 지냈다. 2018년부터 OECD에서 경제 분석 분야 최고위직인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맡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총재에 이어 ECB(유럽중앙은행) 총재를 맡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의 뒤를 잇는 프랑스의 ‘여성 경제 브레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수준인 고령화를 해결해야 하고 동시에 인적 자원의 활용도를 높여야 하는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지만 기혼 여성의 고용률이 저조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랑스 분 OECD 수석이코노미스트/OECD 제공

그는 “한국인들은 50대에 평생 일한 직장을 나온 뒤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람들에 대한 직업 재교육을 강화해 숙련도를 높이고 더 길게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20대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직업 체험 교육을 확대할 것을 권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며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끌어올리고 동시에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수준을 높여 격차를 줄여나갈 것을 권한다”고 했다. 정규직의 과보호를 낮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생산성이 낮고,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이 뒤떨어지는 등 구조적인 불균형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로랑스 분(맨 오른쪽) OECD 수석이코노미스트가 2014~2016년 프랑수와 올랑드(왼쪽에서 두번째)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내던 때 모습. 맨 왼쪽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며, 올랑드와 분 사이에 얼굴이 조금 가려진 인물은 마리오 드라기 현 이탈리아 총리(당시 유럽중앙은행 총재)다./visonsmag

OECD는 이달 초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는 기존 2.8%에서 3.3%로 끌어올리고, 내년은 3.4%에서 3.1%로 끌어내렸다. 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 호조로 올해 한국 경제가 빨리 반등하는 만큼 내년에는 추가 성장할 여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작다”고 했다.

그는 올해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낙관했다. 미국이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9000억달러+1조9000억달러(합계 약 3170조원)’ 부양책을 가동하는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고 했다. OECD는 이달 초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2%에서 5.6%로 높였다. 백신의 빠른 보급과 대규모 부양책을 반영해 성장률을 대폭 올려 잡았다고 했다.

그는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시장을 자극해 인플레이션과 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우선은 타이밍 맞는 대응으로 시장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며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했던 경제 위기 때 과감한 액션이 늦어 회복이 더뎠던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모멘텀을 놓치면 안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한 경제 성장률이 어느 정도 회복되더라도 고용 지표는 후행하면서 상당 기간 저조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로랑스 분 OECD 수석이코노미스트/OECD 제공

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부양책으로 공공 부문 부채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이를 상쇄할 여지는 있다”고 했다. 부양책 중 일부를 기존 부채를 갚는 데 썼고, 저금리 흐름이 지속된 덕분에 각국 정부가 부채 상환 부담이 줄어들어 여력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계량적으로는 미국에서 실업률이 내려가는 폭에 비해 물가가 오르는 폭이 훨씬 작다고 설명했다. 물가 상승을 크게 우려해야 할 근거가 약하다는 얘기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채는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채를 관리하려면 더 높은 성장을 추구하는 게 기본이 돼야 한다”고 했다. 경제 규모(GDP) 대비 부채 크기를 줄이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독립적인 재정 평가 기관을 두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치 권력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재정 상태를 철저히 분석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기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기 재정 목표를 설정하고 못 미쳤을 경우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기후변화 대응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고 했다. 기후변화가 주거 안정을 해치고 미시적인 경제 안정성과 재정 안정에도 영향을 주는 변수가 된다고 했다. 그는 “환경 친화적인 혁신을 선도하는 나라가 미래에 기회를 많이 잡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기술 수준은 높지만 탄소 배출 줄이기와 관련해 소홀하다는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