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온이 24도까지 올라간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대표적 광장인 트래펄가 광장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겨우내 공사 중이던 광장의 분수가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냈고, 그 앞으로 반팔, 반바지 차림의 10대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빠르게 지나갔다. 분수 주위에 걸터앉아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던 대학생 브루니엘다(23)씨는 “코로나로 썰렁했던 광장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며 “이제 일상이 내 삶으로 되돌아온 것 같아 마음까지 설렌다”고 했다.
코로나 3차 유행 조짐에 봉쇄령을 강화하고 있는 유럽 대륙 국가들과 달리 백신으로 무장한 영국이 일상을 되찾고 있다. 테이트모던 미술관 앞에선 버스킹이 열려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템스강변을 따라 울려 퍼졌다. 버킹엄 궁전 앞 세인트제임시스 파크엔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날 BBC 등 영국 언론은 나흘간(2~5일) 부활절 연휴를 앞두고 “이번 부활절은 작년 말 못 즐긴 ‘크리스마스 시즌 2′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전했다.
영국인들에게 평소의 삶을 되찾아준 건 백신이다. 영국의 변이 코로나로 인해 40여국에서 영국발 항공기 운항이 금지되고 일일 확진자 수가 6만8000명에 달했던 게 불과 서너 달 전이다. 지난해 12월 8일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에선 지금까지 총 3090만명이 최소한 백신 1회 접종을 마쳤다. 전체 인구의 46%이고, 18세 이상 성인 인구만 따지면 58.7%에 달한다. 전체 인구 중 비율은 전 세계 주요국 중 이스라엘(57.8%) 다음으로 높다. 미국(29.3%), 프랑스(11.9%), 독일(11.3%), 이탈리아(11.3%)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접종을 가장 먼저 시작한 데다 되도록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맞도록 1차 접종에 박차를 가해 속도를 높였다.
영국 통계청은 이미 잉글랜드 인구의 54.7%가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 인구의 70~85%가 항체를 보유하면 집단면역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봉쇄 완화를 발표하며 “몇 달간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주부터 단계적인 봉쇄령 완화에 들어갔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봉쇄령 발표와 해제를 반복하다 지난 1월 초부터 “집에 머무르라(stay at home)”는 전면적인 봉쇄령을 내렸다. 필수품을 사거나 병원에 가거나 혼자 운동하기 위해 잠깐 외출할 수 있었고, 밖에선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석 달 만인 이번 주부터 봉쇄령을 완화하면서 “집에 머무르라”는 지침을 해제했고, 야외에서 6명까지 모이는 것도 허용했다. 오는 12일부터는 식당과 펍에서 야외 좌석에 한해 영업이 재개된다. 옷 가게, 미용실, 헬스장 같은 비필수 상점도 문을 연다. 12월 초 이후 영업을 하지 못한 런던 시내 중심가 옥스퍼드스트리트의 상점들은 마네킹에 걸려있는 겨울옷을 봄옷으로 바꾸며 영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한껏 올라간 기온과 함께 야외에선 마스크도 사라지고 있다. 이날 공원, 거리에서 마스크를 낀 사람은 아시아인을 제외하곤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부는 야외라도 사회적 거리 두기는 계속 지켜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맷 행콕 보건장관은 “따뜻한 날씨를 즐기자. 하지만 안전하게 하자. 우리는 여태까지 잘 해왔다. 날려버리지 말자”고 지난달 29일 트위터에 썼다.
영국을 제외한 인근 유럽 국가들은 3차 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 프랑스에선 4만1907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와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의 3분의 1가량에 적용하던 이동 제한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당분간 학교를 폐쇄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와 독일도 상황이 악화돼 각각 2만3904명, 2만825명의 일일 확진자 수를 기록했다. 이날 영국의 확진자 수는 4052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