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독일이 코로나 백신의 특허권 보호를 일시적으로 유예하자는 미국의 요청에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화이자·모더나 등이 갖고 있는 백신 제조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일시 보류해서 전세계에서 생산량을 늘리자는 미국 주도의 논의에 독일이 일단 제동을 건 것이다.

독일 정부는 6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지적 재산권 보호는 혁신의 원천이며 미래에도 그렇게 유지돼야 한다”며 “백신 생산을 증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생산 능력과 품질 관리이며 지적 재산권이 아니다”고 했다.

기존 백신 생산업체들이 고품질의 백신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더백신 보급에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우구르 사힌 최고경영자/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정부는 “이미 백신 제조업체들은 생산을 늘리기 위해 여러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면 ‘백신 개발업체의 지적 재산권을 존중하면서 이 업체들이 고품질 생산을 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늘리는 게 효율적이고 미래의 기술 혁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AFP 연합뉴스

독일의 의견대로 일각에서는 지적 재산권을 유예해서 제조 기술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품질 관리를 제대로 못해 엉터리 백신을 만드는 나라나 제약사들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향후 다른 유행병이 창궐했을 때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독일이 지적 재산권 유예에 반대한 것은 일단 자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엔테크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바이오엔테크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개발했다.

앨버트 벌라 화이자 최고경영자는 지적 재산권 유예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화이자가 미국 정부의 설득에 동의해 지적 재산권을 유예한다고 하더라도 공동개발자인 바이오엔테크가 동의하지 않으면 난항을 겪을 수 있다.

게다가 독일은 자국 제약사 큐어백이 화이자, 모더나에 이에 세번째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자국의 이익 보호에 나서야 하는 입장이다.

바이오엔테크 창업자인 우구르 사힌과 부인 외즐렘 튀레치는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공로로 독일 정부로부터 연방공로십자 훈장을 받았다. 두 사람은 터키계 이민 2세다./AP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유럽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독일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적 재산권 유예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며 사실상 찬성의 뜻을 밝혔다.

독일과 달리 백신 개발에 실패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지적 재산권 유예에 찬성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찬성 입장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미국의 백신 지적 재산권 유예 제안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