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한 수력발전소. /하이드로 리뷰

북유럽의 노르웨이는 수력발전을 하기 좋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고 있다. 험준한 산이 많은 지형이고 수량(水量)이 풍부하다. 지난해 전체 전기의 91.8%를 수력발전소에서 만들어냈다. 유럽 최대 산유국이지만 굳이 화석연료를 땔 필요가 없다. 전 국민 530만명이 쓸 만한 전기를 수력발전만으로 무리 없이 생산하고 있다.

이웃 나라 스웨덴은 여건이 살짝 다르다. 북부 지방에 수력발전을 가동하기에 용이한 지형을 갖추고 있지만 노르웨이보다는 효율이 다소 부족하다. 인구도 1020만명이라 노르웨이의 2배에 가깝다. 스웨덴은 작년 기준으로 전체 전력의 44.5%를 수력으로 만드는 동시에 원전에서 30.1%를 생산하는 ‘수력+원전’ 조합을 가동했다.

그래픽=양인성·백형선

유럽 국가들은 각자 지리적 환경, 에너지원 수급 여건, 인구 및 전력 수요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각자 최적의 ‘에너지 믹스’에 도달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나라마다 여건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하나의 정답은 없다. 저마다 최적화된 에너지 조합을 선택해 효율은 높이고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줄이기 위해 애쓴다.

같은 북유럽에 있지만 노르웨이·스웨덴과 달리 험준한 산이 없는 덴마크는 북해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활용하기 편리한 나라다. 지난해 전체 전력의 56.3%를 풍력으로 만들어냈다. 국토가 좁은 덴마크는 오는 2033년까지 축구장 400개 넓이의 풍력발전용 인공섬을 건설하기로 했다. 대서양의 강한 바람을 활용하기 편리한 아일랜드도 전체 전력의 35.1%를 풍력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2033년 완공될 예정인 덴마크 인공 에너지 섬의 조감도/덴마크 에너지부 홈페이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남유럽은 태양광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아직 태양광의 전기 생산 효율이 높지 않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이탈리아(9.6%), 그리스(9%) 스페인(7.8%)은 태양광으로 전체의 10분의1 가까운 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태양광 발전 비중의 세계 평균이 2.7%에 그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큰 흐름으로 볼 때 유럽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점점 높이는 추세다. 그러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9년 원전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급격하게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원전 비중을 낮추려다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원전 축소 속도를 늦추는 사례가 스웨덴·프랑스에서 나왔다. 이런 속도 조절 역시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찾는 과정의 일환이다.

작년 12월 프랑스 원자로 제작사 프라마톰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AP 연합뉴스

스웨덴은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을 결정했다. 당시 2010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없애자고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전력 수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천천히 탈원전을 진행했다. 스웨덴은 1980년대 50%를 넘나들던 원전 비율을 지난해 30.1%로 줄이기까지 30년 넘게 걸렸다.

유럽 최대 원전 대국 프랑스는 지난해 원전 비율이 67.2%에 이른다. 프랑스도 원전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속도 조절을 하려는 기류는 뚜렷하다. 2012년 취임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시절 원전 비중을 50%로 줄이는 시점을 2025년으로 정했지만, 뒤를 이어 2017년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50%가 되는 시점을 2035년으로 10년 미뤘다.

유럽에서는 탈원전 국가들의 탄소 배출량이 더 높게 나오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전을 가동하지 않을 경우 아직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효율이 높지 않아서 화석연료 사용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빠른 탈원전을 추진 중인 독일과 원전을 제1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프랑스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독일은 전력 생산에서 화석 연료 사용 비율이 43.7%에 달해 9.4%뿐인 프랑스보다 훨씬 높았다. EU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19년 연간 1인당 탄소 배출량이 독일 10.1t, 프랑스 6.8t이었다. 독일인이 프랑스인보다 탄소 배출이 48% 더 많았다는 얘기다.

독일 외에도 원전 비중이 낮은 나라들의 탄소 배출이 대체로 많다. 원전에서 만드는 전기가 전체의 3.2%에 그치는 네덜란드는 1인당 탄소 배출량이 11.1t으로 독일보다도 많다. 풍력 발전 비중이 높아 친환경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덴마크와 아일랜드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덴마크와 아일랜드는 둘 다 원전을 전혀 가동하지 않고 있는데, 풍력만으로 에너지 수급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제법 사용한다. 1인당 탄소 배출량이 덴마크 8.1t, 아일랜드 12.8t으로서 원전 대국 프랑스(6.8t)보다 대기오염을 많이 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