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드 스트림 2/그래픽=양인선

러시아-독일 간 천연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에 대해 미국이 공사 완료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독일과 합의했다. 그동안 미국은 노르트스트림2가 유럽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키워준다며 줄곧 반대해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 우방의 단합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 가스관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독일의 입장을 수용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위협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유럽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미국과 독일은 공동성명을 내고 노르트스트림2를 완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막으려는 시도를 중단하는 대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또는 주변 국가를 압박하기 위해 노르트스트림2를 활용할 경우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친환경 에너지 기반 시설 건설에 10억달러(약 1조1500억원)를 내놓기로 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러시아 북서부에서 출발해 발트해 해저를 지나 독일 북부에 이르는 길이 1225㎞ 해저 가스관이다. 노르트스트림1이 앞서 2012년 가동을 시작했는데, 러시아와 독일은 그 바로 옆에 2018년부터 쌍둥이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현재 공정률은 98%에 이른다. 이 가스관의 한 해 수송량은 550억㎥로 유럽 천연가스 수요의 4분의 1에 달한다.

독일은 빠른 탈원전 영향으로 에너지 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어 러시아 천연가스가 절실하다. 쓰고 남는 가스는 유럽 다른 나라에 다시 팔아 수익을 챙기려는 계산도 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순수한 경제적 차원의 사업”이라고 강조해왔다.

반면 미국은 안보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가 심해져 러시아의 힘을 키워준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실제로 2006년과 2009년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천연가스관을 갑자기 잠가버려 프랑스·이탈리아까지 피해를 준 적 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던 2019년 12월 노르트스트림2 공사에 참여하는 기업을 제재하겠다고 경고했고, 그에 따라 한 스위스 업체가 손을 떼면서 1년간 공사가 중단된 적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도 올해 1월 출범하자마자 독일에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노르트스트림2 참여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중단한 데 이어, 이날 전격적으로 완공에 합의했다.

미국이 태도를 바꾼 데는 이미 공사가 98% 완료돼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 감안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힘을 결집시키고 싶어 했고, 특히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서방이 뭉치는 게 중요하다고 바이든이 판단했다는 뜻이다. 독일 입장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줄타기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노르트스트림2 완공에 동의했다고 발표하자마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는 공동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관통하는 기존 천연가스관의 가치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연간 30억달러(약 3조4500억원)에 달하는 통관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천연가스관은 러시아가 침공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패막이였는데, 이 역할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러시아와 적대 관계인 폴란드는 이 가스관이 결국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져 주변국 안보가 더욱 위태롭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달래고 있다. 21일 백악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오는 8월 30일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유럽 정상으로는 메르켈 총리에 이은 두 번째 초청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이 우방끼리 협력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노르트스트림2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 말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독일이 노르트스트림2와 관련해 유사시 대응한다는 합의는 내용이 애매모호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주변국에 위협을 가하면 독일이 곧바로 천연가스 수송을 끊을 수 있는 ‘킬 스위치(kill-switch)’ 조항을 넣자고 했지만 독일이 반대해 무산됐다. 민간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법적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상원 외교위원회 존 바라소 상원의원(공화당)은 “바이든이 러시아에 새로운 지정학적 무기를 줬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