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현 총리가 10일(현지 시각) 사임을 선언하면서 지난 4일 집권당 사회민주당(SAP) 대표 선거에서 당선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54) 당 대표 겸 재무장관의 총리 입성이 유력해졌다고 이날 스웨덴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스웨덴은 북유럽 국가 중 여성의 법적·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나라로 손꼽히면서도 여성 국가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마지막 북유럽 국가였다. 총리 지명을 위한 의회 표결은 이르면 다음 주 중 열릴 예정이다. 스웨덴 일간 스벤스카다그블라데트는 “사민당과 연정 중인 녹색당은 안데르손을 지지하고 있어 스웨덴 중도당과 민주당의 지지 여부가 열쇠”라며 “중도당이 지지 선언을 할 것으로 보여 안데르손의 총리 당선 가능성은 크다”고 전했다.
안데르손은 세무 관료를 지낸 경제학자 출신으로 이념적으로는 중도 좌파인 사민당 소속이면서도 무리한 재정 확장과 증세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재정적으로 중도 또는 중도 우파적 성향의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녹색당과의 연립 정권 내에서 분출하는 여러 지출 확대 요구를 뚫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고, 뢰벤 총리로부터 “세계 최고의 재무장관”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의 뚝심 있는 재정 운용으로 스웨덴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비상 상황이 몰고 온 경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를 갖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은 잘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친절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국민들로부터는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안데르손이 총리가 되면 아이슬란드의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 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에 이어 스웨덴까지 여성 총리가 나라를 이끌게 된다. 만 8년간 재임 후 지난달 14일 퇴임한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까지 포함하면, 올해 북유럽 5국이 모두 여성이 이끌거나 이끌었던 나라가 되는 셈이다.
북유럽 5국은 여성의 사회 참여와 지위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여성의 날을 앞두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여성의 정치·기업 경영 참여 수준을 측정해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를 보면 스웨덴·아이슬란드·핀란드·노르웨이가 1~4위를 휩쓸고 덴마크가 6위를 차지, 이 5국이 상위권을 독차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즘 대통령’을 표방하며 ‘성 평등 사회’를 외쳐온 한국은 29국 중 꼴찌였다.
의회의 여성 의원 비율도 아이슬란드 48%, 스웨덴 47%, 핀란드 46%, 노르웨이 45%, 덴마크 40% 등이다. 특히 핀란드는 지난 2000년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타르야 할로넨)을 뽑았고, 현재 연립 내각을 구성한 5개 정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일 정도로 여성 정치인이 대세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선 여성이 군에 징집돼 전투병으로 복무하기까지 한다. 여성 총리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안데르손의 총리 입성은 여성 총리와 유독 인연이 없었던 스웨덴의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남녀 공통 육아휴직 도입, 남녀 동일 임금과 고용 차별 금지 등 양성 평등 정책에서 가장 앞서간 나라였지만, 여성 총리 배출엔 계속 실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다른 북유럽 4국이 두 번 이상 여성 총리가 나왔던 것과 비교된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여성 총리 후보로 유력했던 안나 린드 당시 외교부 장관이 스톡홀름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테러범의 흉기에 찔려 숨지고, 2007년 사민당 대표였던 모나 살린이 2010년 선거에서 패배해 물러나면서 계속 기회를 놓쳤다.
스웨덴과 유럽 정치사에 새 역사를 쓰게 될 안데르손 장관은 학생 시절 국내 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수영 선수 출신이다. 스톡홀름 경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빈 대학과 하버드대에서도 공부했다. 1996년 당시 예란 페르손 총리의 자문역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뢰벤 총리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발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