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일 오전10시(한국시간 밤 12시) 비디오 정상회담을 갖는다. 주(主)의제는 우크라이나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북동쪽과 동쪽, 남쪽 세 방향 국경 인근지역에 모두 11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언제든 침공할 준비를 갖췄다. 미 국방부는 내년초가 되면 러시아 병력은 17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러시아가 지난 3,4월에 이어, 우크라이나 주변에 또다시 군사력을 증강한 이유는 뭘까. 표면적인 1차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EU(유럽연합) 가입을 강력히 희망하는 등,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한 우크라이나가 계속 친(親)서방 노선을 밟기 때문이었다. 푸틴은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공격의 ‘교두보’로 삼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크라이나를 ‘한 나라, 한 민족’으로 보는 푸틴과 러시아인들의 인식에 있다. 푸틴과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를 ‘다른 나라’로 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한 몸(one body)’이란 시각이 팽배하다. 똑같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나토 가입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이 주는 의미가 확연히 다른 것이다. 러시아와 ‘한 뿌리’라고 생각하는 나라에 서방의 군사행동이 강화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푸틴은 지난 3일 “미국‧EU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법적인 보장(legal guarantee)’을 요구했다.
국제 정세도 러시아에 불리하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에선 코로나 확산을 막고, 세계에선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급선무다. EU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 폭등 속에서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에 매달려 있다. 독일은 정권 교체기다. 푸틴으로선 지금이 우크라이나에 긴장을 조성해 우크라이나의 ‘위성국가’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이다. 러시아는 무력 침공을 해도, 미국이 나토 회원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주권국 우크라이나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대국 간 딜(deal)로써 한 나라를 러시아의 ‘꼭두각시 국가’로 전락시킬 수는 없다. 결국 미국으로선 푸틴과 그 측근들의 막대한 서방 내 재산 동결, 러시아의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SWIFT) 접근 차단과 같은 강력한 경제적 제재 외에 이렇다 할 견제 수단이 없다.
◇러시아인, 우크라이나를 ‘리틀 브라더’로 인식
푸틴은 지난 7월 12일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역사적 통일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무려 5000자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두 나라의 분리는 양국에 대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중세 러시아의 모태가 된 키예프 루스(882~1240)의 중심 도시였다. 러시아 역사에서 ‘왕관의 보석’과 같은 존재다.
실제로 두 나라 사람들은 매우 섞여 있다. 레닌과 함께 소비에트혁명을 일으키고 붉은 군대를 창설한 레프 트로츠키 초대 외무장관과,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지금은 친(親)서방으로 노선을 바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원래 러시아에서 러시아어로 활동하는 코미디언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심지어 푸틴의 정적(政敵)으로 현재 옥고를 치르고 있는 알렉세이 나발니도 2014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별개 민족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며 “두 나라 사이엔 차이가 없다”까지 말했다. 나발니는 유년 시절을 아버지의 고국인 우크라이나에서 보냈다. 일반적인 러시아인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아, 많은 러시아인은 1991년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것을 아쉬워한다.
◇크림반도도 애초 러시아가 ‘우호 차원’에서 이양한 것
러시아가 2014년 2월말 무력으로 강제합병한 크림반도도 사실은 1954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에 이양한 것이다. 흐루쇼프의 증손녀로 미국 뉴욕의 뉴스쿨대 정치학자인 니나 흐루쇼바에 따르면 “흐루쇼프는 러시아인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했던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크림반도를 이양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은 소련 흑해 함대의 모항이었다. 이 이양은 당시 두 나라가 ‘영원히 함께’ 하는 우호적 상징으로 선전됐다. 그러다가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친(親)러시아 정책에 반발해 EU와의 통합을 원하는 대중의 거센 시위[유로마이단 혁명]가 해를 넘겨 전국으로 확산되자,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2000명의 병력을 보내 점령했다.
러시아 매체들은 “러시아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통제 하에 들어가면서,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강조하는 법이 통과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격의 교두보로 둔갑했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우리의 리틀 브라더’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군에 합세해 신속하게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왜곡 보도한다. 러시아는 침공을 하지 않고도, 왜곡 정보‧사이버 전쟁을 통해서 우크라이나의 쿠데타를 조종하고, 전력망과 금융기관 해킹을 통해 사회를 무질서와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64%, 나토 가입 원해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은 앞으로 가입까지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나토‧EU와 운명을 같이 하기를 원한다. 러시아군이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방을 친(親)러 세력이 점령하게 돕자, 우크라이나 국민의 64%는 나토 가입을 희망했다. 푸틴의 논문은 우크라이나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 역사성을 훼손해서 영토적 야욕을 합리화하려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인에겐 ‘독립국가’의 필요성을 더욱 각인시켰을 뿐이다. 1932~1933년 스탈린 치하에서 잘못된 집단 농업화 정책과 수탈로 인해,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홀로도모르(Holodomor‧기아 학살)’도 우크라이나에선 결코 잊힐 수 없는 역사다.
◇러시아가 미국에 보내는 또 다른 메시지 “우리를 무시 말라”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2018년 사망)은 2015년 러시아를 “국가로 위장한 주유소”라고 무시한 적이 있다. 석유와 가스만 많지, 부패와 금권정치가 판쳐 나라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주변 무력 증강을 통해 “러시아가 미국의 어젠다에서 변두리로 밀릴 나라가 아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2020년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2036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푸틴은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때에는 러시아에서 “스탈린 이후, 러시아 영토를 확장한 첫 지도자”라는 칭송을 들었다. 그에게 이제 유업(遺業)은 옛 소련(USSR)의 복원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는 단지 유럽과 러시아 사이라는 ‘지정학적’ 이슈가 아니라, USSR 2.0의 첫 단추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