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가 자신들을 ‘동생’쯤으로 여기며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야말로 러시아와 독립된 ‘역사적 본류(本流)’라고 주장할 ‘현공(賢公)’ 야로슬라프 1세(978~1054)의 유골을 찾아 미국과 유럽 등지로 다니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국조로 삼는 키예프의 대공이었던 야로슬라프 1세(978~1054년)의 모습/위키피디아

야로슬라프 1세는 11세기 발트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여러 동(東)슬라브 공국들을 연합한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법전을 통일한 역사적 인물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모두 자신들의 국조(國祖)로 간주해, 두 나라 화폐에 모두 그의 이미지가 인쇄돼 있다.

야로슬라프 1세의 이미지가 들어간 우크라이나 지폐(위)와 러시아 지폐/위키피디아

또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가 훈장으로 ‘야로슬라프 훈장’이 있고, 흑해에는 러시아의 ‘야로슬라프’ 프리깃함이 떠다닌다. 그런가 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월 두 나라가 ‘한 나라’임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야로슬라브가 최전성기로 키운 ‘키예프 루스’를 들었다.

야로슬라프 1세 시절 최전성기 때의 키예프 루스 영토. 지금의 우크라이나 서부-북부와 벨라루스, 러시아 서부를 지나 핀란드 접경까지 달했다./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웃 벨라루스나 러시아가 자기들의 뿌리를 키예프 루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이야말로 키예프 루스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결정적인 ‘상징성’을 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국조인 키예프 대공(大公)인 야로슬라프 1세의 유골이다. 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우크라이나의 문화재 책임자들은 야로슬라프의 유골을 추적해 유럽과 미국까지 단서를 좇아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다니고 있다고 소개했다.

키예프 루스는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쇠락했고,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지역은 이후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잠시 독립을 했고,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우크라이나는 다시 독립국가가 됐다.

야로슬라브 1세의 유골을 담은 석관이 안치돼 있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성소피아 성당/위키피디아

◇1930년대 석관(石棺) 두 번 열었을 땐 있었던 유골이…

원래 야로슬라프의 석관과 유골은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있었다. 야로슬라프가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을 본 따 지은 것이었다. 그의 석관은 1936년과 1939년 두 차례 열렸다. 그 안에 놓여 있던 남녀의 유골은 당시 소련의 레닌그라드(상페레르부르크)로 옮겨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11세기 유골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 유골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왔고, 우크라이나 정부 기록에 따르면 1964년에 다시 석관을 열어 재안치를 했다. ◇2009년 열자 대공(大公) 유골만 감쪽같이 사라져 1991년 러시아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졌다. 그래서 야로슬라프의 관을 다시 열어 그의 DNA를 현재 프랑스‧독일‧헝가리인들의 DNA와 비교하려고 했다. 야로슬라프와 지금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계 혈통이라기 보다는 범(汎)유럽계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2009년 석관을 열자, 야로슬라브 1세의 두번째 아내 유골만 나왔다. /성소피아 성당

그런데 2009년 9월10일 2톤짜리 석관 뚜껑을 다시 열었을 때, 관 속에서 발견한 유골은 모두 야로슬라브의 두 번째 아내였던 잉게게르드의 것뿐이었다. 이 여성 유골은 1939년 레닌그라드 검사에서 밝혀진 사실과 일치했다. 대공의 뼈만 증발한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으로 뼈 찾아 수소문

1939년까지 분명히 있었던 대공의 유골이 1964년 재안치 때에는 이미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이후 키예프 성소피아 성당의 문화재 책임자는 해외의 우크라이나인 공동체에 도는 온갖 소문과 기록을 추적했다. 그 결과, 1954년에 나온 보도와 1967년 미국의 한 언어학자가 주장한 내용은 “2차 대전 중에 러시아군의 재진입에 앞서, 대공의 유골을 독일군이 바르샤바로 빼돌렸고, 현재는 미국 뉴욕의 한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당에 보관돼 있다”는 것으로 요약됐다. 우크라이나 문화재 책임자들은 실제로 2010년 뉴욕 브루클린의 한 우크라이나정교회 소속인 홀리 트리니티 성당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이곳에서 반세기 전 일부 주장에서 “대공의 유골과 함께 빼돌려졌다”는 성 니콜라스의 조각물(icon)은 발견했지만, 뼈는 없었다.

당시는 친(親)러 대통령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시절이라, 대공의 유골이 우크라이나로 송환됐다가 결국 러시아의 손에 빠질까봐 미리 빼돌렸다는 설이 돌았다. 그러나 이 브루클린 정교회 성당의 고위 성직자들은 지금도 함구한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적으로 대통령에 선출된 페트로 포로셴코는 “대공의 유골이 브루클린의 홀리트리니티 성당에 있다”며 미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인터폴(국제형사기구) 등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정작 수사를 맡은 국토안보부 요원들은 2017년 가을 브루클린에 있는 엉뚱한 러시아정교회 성당을 수색했고, 허탕을 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 대통령인 젤렌스키도 야로슬라프 대공의 유골을 찾는데 안간힘을 쓰며 미국 주요 도시의 우크라이나계 공동체와 접촉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