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성홍기와 유럽연합(EU)기. /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최첨단 기술 산업에서 새로운 국제 기술 표준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미래를 선도할 분야에서 ‘퍼스트무버’로 나서려는 미국 등 서방 국가와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EU가 활로를 찾아 나섰다는 분석이다.

2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EU는 전날 날로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고자 새로운 국제 기술 표준을 설정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이 얼굴 인식 시스템이나 배터리 발전, 차세대 환경 혁신 등과 같은 분야를 이끄는 ‘국제적 벤치마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EU 관계자들이 화웨이 등 거대 기술 기업 성장에 발맞춰 중국이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 6G 등 분야에서 기술 표준을 설정하는 데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2020년 화웨이와 차이나텔레콤 등 중국 통신업체가 기존 인터넷 표준 프로토콜(규약)을 대체할 새로운 인터넷 표준 개발에 나선 것이 촉진제가 됐다고 했다. EU는 중국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주요 기관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전을 펼치는 것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EU 관계자는 “중국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술 표준 분야에서 매우 강력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략 시행을 위해 EU 관계자들은 미국 당국과 만나 국제 기술 표준 제정에 대한 합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표준 분야에서 대중 포위망을 확대해 공동 전선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EU와 미국은 기술과 무역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기술이사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세부 사항을 조율하겠다는 방침이다. 무역기술이사회는 작년 6월 유럽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당시 반도체 등 핵심 부품에 대한 공급망을 강화하고 무역 분쟁에 대비하고자 설치를 합의한 기구로,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라는 평가가 잇따랐다.

EU의 이번 조치는 중국이 인공지능 등 첨단 분야에서 자국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설정하고 관련 시장을 주도하려 내놓은 ‘중국 표준 2035′에 맞서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베스타게르 집행위원은 “전 세계가 따르는 기술 표준이 (유럽과 같은) 민주적인 시장경제 상황에 맞춰진다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