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선 작년 11월 첫 여성 총리(막달레나 안데르손)가 취임했다. 그러나 이보다 25년 앞선 1996년, 당시 38세였던 스웨덴 사민당 정부의 부총리 모나 살린(Sahlin)은 이 나라의 첫 여성 총리가 될 뻔했다. 1995년 잉바르 칼손 당시 스웨덴 총리는 다음해 3월 사임을 예고했고, 후계자로 살린을 지명했다.
◇총리 계승 눈앞에 두고, 정부 법인카드 개인 사용 드러나
그런데 총리직 계승을 반년 앞둔 1995년 10월, 살린이 정부 신용카드로 ‘토블론(Toblerone)’ 초콜릿과 아기 기저귀, 개인 물품을 사고 차량 임대비를 지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살린이 정부 카드를 사적 용도로 쓴 비용은 약 5만 크로나(약640만원)이었다. 이어 18건의 주차위반 사실과 탁아비용 수개월 지불 연체 사실도 드러났다.
살린이 정부 신용카드로 개인용품을 산 것에, 스웨덴 국민은 분노했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살린은 정부 신용 카드로 쓴 개인 비용을 모두 재무부에 상환했고, 1만 5000 크로나(약200만원)의 벌금도 냈다.
이 사건은 스웨덴에서 살린이 구매한 초콜릿 브랜드의 이름을 따 ‘토블론 어페어’라고 불린다. 살린은 부총리 직을 물러나며 스스로 “자기 비용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총리가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살린은 이후 2007년~2011년 야당이 된 사민당을 이끌며 재기(再起)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6년 5월에 자신이 고용한 경호원의 월급 액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확인서를 써 준 게 드러났다. 경호원이 은행에서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기 쉽게 도우려 한 것이었지만, 거짓은 거짓이었다. 그는 당시 맡았던 폭력적 극단주의 해소를 위한 국가조정관 직책에서 즉각 사임했다. 2017년엔 저술과 강의에서 수익 15만1000여 크로나(약2000만원)를 소득신고하지 않아 탈세 혐의로 기소됐다. 2만3000 크로나(약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스웨덴에서 총리 외엔 관용차‧운전기사 없어
2018년 ‘스웨덴: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Sweden: Untold Story)’라는 책을 낸 브라질 기자 클라우디아 월린에 따르면, 스웨덴에선 장관‧국회의장‧의원들 모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전용 관용차나 개인 운전기사가 없다. 공직자가 택시를 탔다면, 뉴스에 나올 정도라고 한다.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없고, 개인 비서가 없는 의원 사무실의 넓이는 고작 8㎡(2.42평)다. 총리만이 보안상의 이유로 전용 관용차가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스웨덴 판사 역시 관용차가 없다.
◇스웨덴 부패인식지수 세계 4위 vs. 한국 32위
지난달 25일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1년 부패인식지수 랭킹’에서 스웨덴은 4위, 한국은 32위였다. ‘가장 청렴’을 100점으로 했을 때, 외국의 국제 기관들이나 기업들이 볼 때에 스웨덴은 85점, 우리나라는 62점이었다. 아시아‧중동에선 싱가포르(4위)‧홍콩(12)‧일본(18)‧UAE(24)‧부탄(25)‧타이완(25)‧카타르(31)가 우리를 앞섰다.
작년 1월 우리나라가 33위(2020년 기준)를 기록했을 때, 우리 정부는 “역대 최고 성적”이라며 “정부의 반부패 개혁 의지의 결과”라는 ‘비결’을 밝히는 보도자료를 냈다.
‘스웨덴: 들려주지 않는 이야기’의 저자에 따르면, 스웨덴은 1776년에 세계 최초로 모든 정부 기록 문서에 대한 접근권을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장관‧의원‧판사 등 고위직 인사의 세금신고서는 공공 문서이며, 국민은 지출 경비 내역을 요구할 수 있다.
스웨덴 국민은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세금으로 특권을 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스톡홀름 시장이 버스 정류장에서 줄 서고, 국회의장이 지하철 좌석에 앉아 출근한다. 이런 분위기엔 다른 나라에선 ‘사소한’ 부패도 바로 뉴스가 된다.
◇일 끝나면 베를린 시내 수퍼마켓서 장 보던 메르켈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재직 중에 연방의회 건물에서 걸어서 15분 떨어진 베를린 시내의 울리히(Ullrich) 수퍼마켓의 한 체인점에서 늘 장을 봤다.
울리히 수퍼마켓 사장은 2018년 한 인터뷰에서 “총리는 늘 장보기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단골 고객”이라며 “특별대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가 해외에 나가면, 남편이 장 보러 온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총리와 외무장관을 지낸 칼 빌트도 스톡홀름의 수퍼마켓에서 직접 카트를 밀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