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1일,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친(親)러 반군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2개 지역을 ‘국가’로 승인하고, 이 지역에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했다. 반군 세력은 2014년 러시아군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2개 주 전체 면적의 3분의1(돈바스) 가량을 점령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의 충돌로 지난 8년간 1만4000여 명이 사망했다.
◇ 국가 승인‧러시아군 진입은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
푸틴은 또 두 공화국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군을 평화유지군으로서 출병시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 점령 지역을 “일시적 피(被)점령 영토’로 규정한다.
미국과 서방은 그동안 러시아가 이 두 반군 지역을 국가로 승인하면, 이는 갈등을 대대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라며 “신속하고 단호한 제재”를 경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푸틴의 승인이 있자,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존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미약한 백악관의 초기 대응 조치
하지만, 늦어도 23일 오전(한국시간 기준)까지 러시아군 진입이 완료되는 상황에서 나온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행정명령은 “두 반군 지역(소위 ‘공화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무역‧금융 거래를 금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1일 러시아의 뻔뻔한 도발에 대한 추가 조치가 발표될 것이며, 이들 조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더 침공할 경우’ 준비해 온 신속하고 강력한 경제 조치와는 별도”라고 밝혔다.
◇ “새 움직임 아니다” vs. “그간 준비한 제재, 부질없어질 수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군이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 이는 침공(invasion)이며, 이는 우방국들과 논의한 심각한 경제 대응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이 2개 반란군 거점 지역을 독립된 ‘공화국’들로 승인하고,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정확히 예측했던 행동”(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푸틴의 이 도박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멈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백악관 초기 대응이 미약한 것에 대해, 21일 밤 기자브리핑을 한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로 진입하는 것 자체는 새로운 단계가 아니다. 지난 8년간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수개월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으려고 했던 노력이 부질없어질 수 있다는 현실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 “부대 하나, 탱크 한 대 넘어가도 심각한 제재한다더니…”
저명한 글로벌 안보컨설턴트인 이안 브레머는 “푸틴은 서방이 ‘이게 과연 전면적 제재로 맞설 행동인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끔 움직였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푸틴은 일부러 ‘올인’하지 않았다. 서방이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니까”라는 것이다. 브레머는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비친 건 결국 미국이 그동안 우크라이나 침공 시 부과하겠다던 강력한 제재에서 물러선 모습”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자작극’ 포격으로 우크라이나 반군 지역에 혼란을 야기하고 난민을 유발했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러시아계 ‘학살(genocide)’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 ‘평화유지’의 이름으로 러시아군을 진입시켰다. 하지만 백악관 측은 “이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는, ‘침공의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아니다”고 본다. 푸틴은 바로 이걸 노렸다.
◇미국 매파 “당장이라도 제재 다 쏟아 붓자”
민주‧공화 양당을 막론하고 미 매파에선 푸틴이 더 이상 침공을 꿈도 못 꾸게, 준비한 경제 제재를 다 쏟아 붓자고 흥분한다.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푸틴이 돈바스 너머로 통제권을 확대하기 전에, 루블화(貨)를 파괴하고 러시아 석유-가스업계를 박살낼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트위터에 썼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러시아 대사를 지낸 마이클 A 맥폴도 “이건 명백히 우크라이나 주권 국가에 대한 침공(invasion)”이라며 “서방은 도발 수준에 비례해 대응하지 말고, 약속했던 모든 범위의 제재를 강력하게 단행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