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현지 시각)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대국민TV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민스크 조약준수를 하지않고 평화적 해결책에 관심이 없다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전투활동을 멈추라고 말했다. /로이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1일,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친(親)러 반군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2개 지역을 ‘국가’로 승인하고, 이 지역에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했다. 반군 세력은 2014년 러시아군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2개 주 전체 면적의 3분의1(돈바스) 가량을 점령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의 충돌로 지난 8년간 1만4000여 명이 사망했다.

푸틴이 21일 '국가'로 승인하고,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한 우크라이나 반군 장악 지역인 돈바스. 우크라이나 동부 2개 주인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주 전체 면적의 3분의1을 차지한다.

◇ 국가 승인‧러시아군 진입은 우크라이나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

푸틴은 또 두 공화국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군을 평화유지군으로서 출병시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반군 점령 지역을 “일시적 피(被)점령 영토’로 규정한다.

미국과 서방은 그동안 러시아가 이 두 반군 지역을 국가로 승인하면, 이는 갈등을 대대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라며 “신속하고 단호한 제재”를 경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푸틴의 승인이 있자,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존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22일 우크라이나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주민들이 거리에 나와, 푸틴이 전날 이 지역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으로 승인한 것을 축하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미약한 백악관의 초기 대응 조치

하지만, 늦어도 23일 오전(한국시간 기준)까지 러시아군 진입이 완료되는 상황에서 나온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행정명령은 “두 반군 지역(소위 ‘공화국’)에 대한 미국인의 신규 투자‧무역‧금융 거래를 금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1일 러시아의 뻔뻔한 도발에 대한 추가 조치가 발표될 것이며, 이들 조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더 침공할 경우’ 준비해 온 신속하고 강력한 경제 조치와는 별도”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2월 20일(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결정과 관련해 국가안보위원회를 소집해 회의를 하고있다./백악관/로이터 연합뉴스

◇ “새 움직임 아니다” vs. “그간 준비한 제재, 부질없어질 수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군이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으면, 이는 침공(invasion)이며, 이는 우방국들과 논의한 심각한 경제 대응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이 2개 반란군 거점 지역을 독립된 ‘공화국’들로 승인하고,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한 것은 “그동안 미국이 정확히 예측했던 행동”(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 푸틴의 이 도박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멈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도, 백악관 초기 대응이 미약한 것에 대해, 21일 밤 기자브리핑을 한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러시아군이 돈바스로 진입하는 것 자체는 새로운 단계가 아니다. 지난 8년간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수개월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으려고 했던 노력이 부질없어질 수 있다는 현실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 “부대 하나, 탱크 한 대 넘어가도 심각한 제재한다더니…”

저명한 글로벌 안보컨설턴트인 이안 브레머는 “푸틴은 서방이 ‘이게 과연 전면적 제재로 맞설 행동인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끔 움직였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푸틴은 일부러 ‘올인’하지 않았다. 서방이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니까”라는 것이다. 브레머는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비친 건 결국 미국이 그동안 우크라이나 침공 시 부과하겠다던 강력한 제재에서 물러선 모습”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자작극’ 포격으로 우크라이나 반군 지역에 혼란을 야기하고 난민을 유발했고,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러시아계 ‘학살(genocide)’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 ‘평화유지’의 이름으로 러시아군을 진입시켰다. 하지만 백악관 측은 “이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는, ‘침공의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아니다”고 본다. 푸틴은 바로 이걸 노렸다.

◇미국 매파 “당장이라도 제재 다 쏟아 붓자”

민주‧공화 양당을 막론하고 미 매파에선 푸틴이 더 이상 침공을 꿈도 못 꾸게, 준비한 경제 제재를 다 쏟아 붓자고 흥분한다.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푸틴이 돈바스 너머로 통제권을 확대하기 전에, 루블화(貨)를 파괴하고 러시아 석유-가스업계를 박살낼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트위터에 썼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러시아 대사를 지낸 마이클 A 맥폴도 “이건 명백히 우크라이나 주권 국가에 대한 침공(invasion)”이라며 “서방은 도발 수준에 비례해 대응하지 말고, 약속했던 모든 범위의 제재를 강력하게 단행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