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하루에 200억 달러(약 25조 원) 이상의 전비(戰費)를 쓰는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방예산이 54조6000여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군은 한국 국방예산을 이틀에 소진하는 셈이다. 이 같은 전비는 시간이 갈수록 막대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니아 휴전협상 대표도 6일 “막대한 장비 손실과 전사자를 겪으면서, 러시아의 입장도 미묘하게 변화가 감지된다”고 캐나다 일간지에 말했다.
이런 와중에,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6일 “유럽 동맹국들과 러시아산(産) 원유의 금수(禁輸) 조치를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지금까지 600기 이상 미사일 발사
영국의 경제회복센터와 일부 전략 컨설팅 업체들은 지난 3일 “개전 첫 나흘 간 러시아 전비는 70억 달러 정도였으나, 이후 탄약∙보급품 확대와 전사자 속출, 로켓(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하루에 200억~250 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경제는 이미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 침공 이후 서방의 느슨한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의 작년 GDP(국내총생산)은 1조7095억 달러.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면, 눈덩이처럼 쌓이는 전비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600기 이상의 미사일을 소진했다.
7일 러시아와 제3차 휴전 협상에 나서는 우크라이나 대표인 미카이요 포돌야크는 6일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앤메일 인터뷰에서 “지난 2주간 전쟁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막대한 피해를 겪으면서,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즉 러시아가 전쟁 초기에는 우크라이나의 ‘완전 지배’를 요구했는데, “전쟁의 진짜 대가를 깨달으면서, 이제 ‘건설적인 협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쓴 비용과 비교하면
미국은 2001년 이래 두 전쟁을 치르면서, 모두 2조3000억 달러(약 1879조원)를 썼다. 미군 6900여 명이 전사하고, 군사계약 민간인 7500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 막대한 전비는 일반 미국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우선 20년에 걸친 데다가, 이 기간에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최악의 경기후퇴(18개월∙2007년 12월~2009년 6월)와 60년 만에 최장인 경기팽창(2009년 6월 이후 코로나 직전까지 128개월)을 겪었다. 미국은 작년에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1984년 이래 37년 만에 최대인 23조 달러의 GDP를 기록했다.
◇ 블링컨 “미국 독자적인 원유 수입 금지 조치도 배제 안 해”
이미 러시아는 이번 전쟁 이후 서방의 강력한 경제∙금융 제재로 러시아 주식시장은 지난 주 내내 폐쇄됐고, 루블화는 25% 가량 폭락했다. 또 미국과 유럽 대기업들이 러시아 사업을 중단∙포기했고, 신용카드사인 비자∙마스터카드∙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은 러시아 내 업무를 중단했다. 이미 러시아 일부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해 러시아 기업들의 대(對)서방 무역 거래가 차단된 상태에서, 일반인들도 신용카드를 못쓰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6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유럽 동맹국들과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를 놓고 활발하게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방송에 “원유 동향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에 보고했다”며 “글로벌 원유의 원활한 공급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유럽 동맹국들과 활발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블링컨은 또 “유럽 동맹국들이 취하는 조치와 무관하게, 어떤 식이로든 미국이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링컨 발언 이후, 브렌트산(産) 원유는 배럴당 139달러까지 치솟았다.
◇에너지 수출은 러시아 전체 GDP의 14%선
러시아 원유에 대한 금수(禁輸) 조치는 러시아 경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다. 작년에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액은 2350억 달러로, 전체 GDP의 14%에 달한다. 러시아의 오일∙가스 생산은 전체 GDP의 40% 정도다.
러시아는 하루 5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며, 이 중 절반이 유럽으로 간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경제 제재에서도 ‘에너지’와 ‘농업’은 뺐다. 지금까지는 러시아 에너지 관련 부품의 공급 차단과 합작 사업 중단 등에 그쳤다.
미국과 EU(유럽연합)은 3일 러시아 은행들을 은행간 국제 지급∙결제 네트워크인 SWIFT에서 제외하면서도, 이 목록에서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의 거래 은행인 가즈프롬방크∙스베르방크∙ VTB 등은 제외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EU 국가들이 에너지난(難)∙인플레이션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 탓에, 러시아 원유 수출량은 지금도 이전의 70%에 달한다.
푸틴도 우크라이나 침공 시 서방의 ‘원유 금수’를 예상해, 지난달 4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났을 때 2025년까지 1180억 달러 어치의 원유∙가스를 중국에 신규로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블링컨은 “유럽 동맹국들이 취하는 조치와 무관하게,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 (금수)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 경제의 핵(核)을 겨냥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