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주변 도시들에서 후퇴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살해하고 시신에 폭발물까지 설치했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증언이 잇따른다고, 더 타임스를 비롯한 영국 언론이 보도했다. 시신을 수습하려는 이들의 목숨까지 노린 것이다.
수백 구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된 부차 시(市)뿐 아니라, 이 도시의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호스토멜과 이르핀 등에서 발견된 시신 여러 구에서도 이런 폭발물이 발견됐다. 더 타임스는 “이들 도시에서도 수백 구의 시신이 발견됐지만, 폭발물 설치 가능성 때문에 시신 수습 과정이 지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군경(軍警)은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건물 지하와 마당에서 시신을 발견하면, 구조대원들과 기자들에게 부비트랩 설치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물러서 있으라”는 경고를 되풀이한다.
이와 관련, 더 타임스는 “키이우 북서쪽 호스토멜 시에선 러시아군이 시장을 살해하고 시신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이 도시의 우크라이나정교회 주임사제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호스토멜 시는 러시아군이 이곳의 화물기 활주로를 장악하려고 우크라이나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인 곳이다.
호스토멜 시의 피오트르 파블렌코 주임 사제는 이리이 프질리코 시장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다가 겪은 아찔한 경험을 더 타임스에 말했다. 그는 교인들로부터, 시내에 갇힌 시민들에게 식량과 의료품을 전하러 갔던 프질리코 시장과 운전기사가 탄 차량이 러시아군의 총격을 받아 두 명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시신을 옮길 수레와 흰 천을 준비해 현장에 간 파블렌코 사제와 교인은 인근 건물에 위치한 러시아군 저격수들을 목격했다. 파블렌코 사제는 흰 천을 들어보이며 “지휘관과 얘기하고 싶다. 시신을 수습하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이후 파블렌코 사제가 천천히 시신 2구로 다가가는데, 불과 몇m를 가지 않아, 러시아군 병사 한 명이 저지하며 “시신을 만지면 당신도 폭발한다”고 했다. 파블렌코 사제는 “러시아 병사가 성직자인 나의 행동을 보며 자신이 한 짓에 수치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했다. 이어 러시아 병사는 숨진 시장의 재킷 지퍼를 열고 폭발물을 제거했다. 그러나 운전기사의 시신은 그날 수습할 수 없었다. 이 병사는 “시간이 없어 폭발물을 제거할 수 없으니, 내일 다시 오라”고 말했다.
파블렌코 사제는 이틀 뒤 전투가 수그러들자 다시 현장을 찾았다. 러시아군은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폭발물이 제거됐는지 알 수 없었다. 파블렌코 사제 일행은 15m짜리 로프를 운전기사 시신의 한쪽 발에 묶고 끌어당겨 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고, 그제서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파블렌코 사제는 일단 두 구의 시신을 교회 마당에 가(假)매장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기는 날, 정식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겠다”고 더 타임스에 말했다